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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킴 Feb 12. 2021

스페인어 4개월 공부하고 해외 직장 구하기

언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

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페인어


    

 세계 5억 인구, 21개국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세계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기도 하다. 유엔 (UN)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러시아어, 아랍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포함해 스페인어도 공용어 6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페인에는 스페인어를 쓰는 외국인들이 많이 이주 오는 나라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칠레,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적도기니, 과테라, 두라,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스페인, 우루과이 등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어는 포르투갈어와 89%, 이탈리어 하고는 82%, 프랑스어와의 유사성은 75%이지만 실제로 스페인어를 하면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아어를 꽤 이해할 수 있고, 완벽한 대화는 아니지만, 눈치와 섞어 의사소통은 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프랑스어는 발음이 현저히 차이가 나 포르투갈어와 이탈리어만큼 서로 이해를 하지는 못한다.      


 스페인어를 못해 리크루트 에이전시와의 첫 미팅이 10분 만에 끝난 처절한 경험을 한 후 스페인어에 대한 불굴의 의지는 활활 타올랐다. 그게 왜 처절할까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있다. 디자이너 인터뷰는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10분 안에 끝나는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 포트폴리오에 대한 부가 설명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페이지만 손으로 넘겼다. 면접자 역시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손으로 면접을 진행하거나 영혼 털어 바닥에서 박박 긁어 끌어낸 어눌한 스페인어 몇 마디가 다였다. 영어로는 스페인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그 길로 바로 어학원을 끊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kfinland100/19에서... )



언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     



 언어를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이 무엇일까?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어 내가 몰리는 상황이 되는 바로 그 상황 자체다. 다시 말해 목적이 뚜렷하면 언어를 배우는 힘이 초인적으로 발휘되고 언어를 가장 확실하게 빠르게 배울 수 있다. 재미로만 배우게 되거나 혹은 언젠가 써먹겠지라는 생각으로 배우는 경우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에 쓸 것인가 정한 '정확한 목표', 어느 수준만큼 도달하고 싶은가 하는 '언어의 수준' 그리고 간절함, 이 세 가지가 있으면 언어를 정말 빨리, 능동적이고 집약적으로 배우게 된다.      


 내가 원하는 목표는 전공 분야인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을 갖기 위한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원하는 수준은 인터뷰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일과 경력, 작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리크루트 에이전시에서 겪은 씁쓸한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었다. 학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2시간 가는 곳으로 등록했다. 보통 빨리 언어를 늘리려는 방법으로 온종일 앉아 듣는 수업을 집중수업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건 정말 도움이 안 된다. 내가 터득한 실용적인 언어 습득은 배운 것을 하나라도 얼마나 빨리 써먹고, 얼마나 많이 연습하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고 순발력 있는 살아있는 언어로 변신했다. 기계적인 외우기 반복 학습으로 매일 5-6 시간씩 책상에서만 혼자 공부한다고 입 밖으로 나와 주지 않는다.     


 학원이 끝나면 집에 오자마자 복습과 예습을 즉시 했다. 책에서 나온 단어 이외에는 따로 찾아서 공부하지 않았다. 대신 책에서 나온 단어를 사전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다 확인하고 반복해서 소리 내 읽었다. 그리고 나면 바로 인터넷에서 구인 웹사이트에 들어가 디자인, 디자이너라는 의미의 단어인' Diseño, Diseñadora, Diseñador' 키워드를 넣고 구인 요건 사항과 회사가 찾는 인재에 대한 설명을 하루에 하나씩 프린트했다. 모르는 단어를 골라내고, 사용된 동사들을 뽑아냈다. 그 구인광고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 이력서에 들어갈 패션에서 쓰는 전문 단어들을 뽑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내가 완성한 스페인어 이력서 초고는 정말 볼품이 없었다. 남편이 스페인어를 못했다면 전문 통역에 맡겼겠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 남편 찬스를 썼다. 남편이 내 영문 이력서와 스페인어 이력서를 비교하며 교정을 봐주었고 스페인에서 쓰는 이력서 형식을 찾아봐서 그것에 맞게 재배열을 했다.      


 스페인에 입국한 지 4개월이 지나고 직장을 구했지만 그사이에 어눌한 스페인어로 다른 리크루트 에이전시들을 두 번 더 만나러 갔다. 매번 갈 때마다 내 이력을 스페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조금씩 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이 아니었기에 미팅 결과가 형편없긴 마찬가지였다. 한 곳은 면접관이 영어를 꽤 잘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내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언어적인 장애를 포함해 한국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과 유사했다. 결론적으로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해줬다. 답은 명확했다. 싫든 좋든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 스페인 북서쪽에 있는 '자라' 혹은 '망고'같이 큰 SPA 브랜드들만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못하더라도 디자이너로 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게 되었지만, 당시 남편의 사업이 마드리드에 있었기 때문에 마드리드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비장의 무기, 인터뷰를 위한 시나리오 통으로 외우기     



 우선 스페인어로 완성한 내 이력서를 달달 외웠다. 인터뷰 예상 질문과 답변을 시나리오로 직접 만들어 '인터뷰에서 살아남기 대답 리스트'를 만들어 남편에게 스페인어 교정을 부탁했다. A4로 20장 가까이 되는 내용을 매일 연습해 전부 다 외웠다. 숟가락, 양파, 그릇 이런 단어들을 배우고 있는 상황에서 내 스페인어 수준과 인터뷰를 봐야 할 스페인어 수준의 격차가 워낙 컸다.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용어들을 익히는 방법밖에 없다.  단어를 따로 분리해 외우지 않고 내 이력을 설명하는 단어와 동사를 한 문장으로 구성해 짝을 지어서 통으로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 시즌 디자인 콘셉트를 결정하고 트렌드를 분석해 무드 보드를 만들었다.'가 한 묶음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경을 썼던 것은 남편에게 질문지를 줘서 묻게 하고 내가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을 하도록 연기 연습을 같이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바쁠 땐 혼자 허공에 대고 연기를 했다. 실제 인터뷰를 보러 갔을 때 질문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비슷한 단어나 문장이 나오기만 하면 내가 준비했던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읊었다. 왜냐면 그 답변 안에는 어차피 면접자가 결국은 물어볼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구하는 곳 20여 군데를 전부 다 지원을 했다. 주니어 디자이너든 시니어 디자이너 자리는 상관없었다. 첫 시작을 어디서든 먼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다. 월급 금액도 보지 않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누구든 0에서 시작해야 해서 1일 만드는 게 먼저였다. 이것저것 다 따질 여유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면접은 7곳과 봤다. 이것 역시 스페인어 인터뷰를 하는 무료 실전 연습이라 여겼다.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하고 정확히 4개월째 되는 날, 첫 번째 고용 제의를 받았다.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떠난 자리를 채우는 일이었고 패션 회사가 아니라 커튼이나 쿠션 커버 같은 리빙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라이프스타일 회사였다. 월급은 짜디 짠 70만 원. 내가 영국에서 인턴십을 할 때 받던 금액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거라도 좋았다. 어디서부터라도 시작을 하면 올라갈 수 있으니까. 일단은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계약서를 쓰러 회사를 가야 했던 몇 시간 전에 다른 회사에서 패션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회사로 와달라는 연락이었다. 사장 부부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인사과 담당자로부터 받았다.      


     


스페인어를 잘 못 한다는 고백 성사


     

 사장 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꼈다. 내가 있을 곳이 여기구나 하는 본능적인 느낌. 이 인터뷰를 보기 전까지 6번 실전 연습을 했고 그만큼 자신감이 붙어있었다. 예상대로 사장 부부는 인터뷰에 매우 흡족해했고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고백 성사를 했다. 일반 대화가 너무 약했던 나는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해도 괜찮겠냐는 요청도 했다.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일단 감사 인사를 했고 곧이어 사과를 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종 결정을 하시기 전에 제가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스페인어를 잘 못 해요. 스페인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업무에는 지장이 없도록 매일 스페인어 공부를 할 것이지만 초창기에는 적응 기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회사 내 업무와 다른 부서와의 소통에 더 큰 노력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디자인만큼은 인터뷰에서 말씀드린 대로 최고의 디자인을 해낼 수 있고, 디자인, 트렌드 분석, 시즌별 콘셉트 지정, 컬렉션 라인업, 브랜딩, 샘플링, 제작업체와의 소통만큼은 어느 다른 경쟁 지원자보다는 잘할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일한 경험과 증거가 있으니 믿고 자리를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결과적으로 사장 부부는 나의 솔직한 고백에 더 큰 감동을 했다. 내가 스페인에 온 지 4개월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에 까무러쳤고, 나의 스페인어 실력에 (스페인어 인터뷰 대본을 통으로 암기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한 능력) 몇 년 산 줄 알았다는 말씀과 함께 무한 칭찬을 해주셨다. 그 정도의 노력으로 4개월 만에 이렇게 한 것만으로 다른 일들을 어떻게 할지 상상이 된다며 두 사장 부부에게서 "Welcome to Spain"과 "Welcome to our company"라는 말을 같이 해주셨다. 덤으로 양쪽 볼뽀뽀와 딥 허그를 주셨다. 그리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촐랑거리는 마음을 안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Babe, I got it!".      


 그렇게 내 첫 스페인 직장의 시작되었다. 나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되기 전까지 이 회사에서 4년을 넘게 일했다.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구글 번역기와 절친을 맺으며 즉시 번역, 즉시 사용을 반복함으로써 매일매일 쭉쭉 늘었다. 점심시간에 함께 앉아 대화하고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스페인 일상 대화 실력을 같이 늘렸다.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어려운 용어가 아닌 이상 다 이해하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었으며, 1년도 안 되어서 난 구글 번역기 없이 모든 업무를 스페인어로 쓰기, 말하기, 협상하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었다.      


 2년째 디자인 팀에서 가장자리가 높은 디자인 다이렉터로 올랐다. 디자인 팀의 4명의 디자이너와 내 디자인은 화려한 수익 결과를 회사에 가져왔다. 그걸 기반으로 나는 매년 연봉을 두 배로 협상했다. 사장님들은 회사 창립이래. 가장 빠른 성장과 수익을 창출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결혼식을 올렸던 2016년에는 다른 직원들이 결혼할 때는 주지 않은 특별 하사금을 두둑하게 챙겨주셨다.      




영어 울렁증 고민 해결



 해외 직장에서 언어 때문에 고민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많다. 난 항상 그분들에게 오늘 당장 써먹을 수 없는 말들을 과감히 버리라고 말씀드린다. 영어라는 큰 바다에서 애매하게 헤매지 말고, 자신만의 특별한 작은 호수를 만들라고 한다. 대화를 위한 언어가 필요한지, 회사생활을 하며 전문 분야의 언어가 필요한지 본인이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그 후 필요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선택해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한다, 오늘 당장 쓸 살아있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이건 한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영어 울렁증이 있으신 분들은 자신에게 꼭 물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내가 왜 언어를 배우고 싶은가? 어디에 쓸 목적인가? 어느 수준만큼 하고 싶은가? 언제 쓸 것인가? 내 삶에 영어 쓸 일이 없다면 과감히 영어에서 벗어나시어지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은 아무짝에 쓸모없다. 차라리 길 못 찾은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영어, 혹은 몇 날 며칠에 갈 여행지에서 쓸 영어라면 여행 중에 쓸 수 있는 먹고, 자고, 놀 때 쓸 영어 대화를 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난 입사 1년쯤 되었을 때 일 하나는 스페인어로 똑 부러지게 잘했지만, 일반 대화 소통은 여전히 어리바리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목적은 회사에서 전문적인 영역을 높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나의 그런 이해 안 되는 언어 격차를 귀엽게 봐주었고 다들 스페인어 선생님이 돼주었다. 특히 'r' 발음을 잘못할 때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회사에서 줄무늬 패턴이 들어가는 컬렉션이 있을 때마다 난 '라야 raya'라는 단어를 수십 번 수백 번 교정받았다. 지금의 내 스페인어 발음은 전부 첫 직장 동료들의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때론 우린 완벽해질 때까지 언어 장벽을 넘을 시도를 하지 않는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게으름과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완벽하지 않을 때 시작해야 하고,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은 실전에서 실력을 키워가며 할 수 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것만 골라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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