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행복 사이의 전쟁
사업을 하기 전까지 난 돈에 대한 경제교육을 받은 적도 돈 공부를 한적도 없다. 아버지는 해군 장교셨고 환경적으로 군인 가족들이 모여 사는 바닷가 도시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사 다녔다. 대부분 군인 자녀들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 방과 후나 주말에는 군인 자녀들이 가는 해군 성당을 다니거나 군인 아파트와 군인 관사에서 군인자녀 친구들과 놀았다. '돈'과 관련이 먼 군인 사회라는 특화된 세상 안에서 완벽한 풍족함은 아니지만 편안한 안정망 속에서 자랐다.
'돈'에 대한 현실 경험을 하기 시작한 건 대학을 다니면서였다. 우리 집은 자녀가 넷이었고 많은 한국의 부모님이 그렇듯 '자녀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자녀 넷을 모두 대학교에 보내셨고, 군인 봉급으로 네 명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내시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넷이 대학을 다니면서 부모님들을 통해 본 '돈'은 참 어렵고 힘든 것이었다. 내가 느끼고 바라보는 '돈'은 많이 불편하고, 힘들고, 버거운 대상이었다. 이런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사업을 하며 결국 큰 문제로 찾아왔다.
천만 다행히도 나는 '돈 버는 능력'은 꽤 있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 연봉을 높게 받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돈'을 위해서만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패션디자인'이라는 꿈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행동을 했다. 금전적인 어려움이나 못할 상황들은 수십 번도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돈이 나를 가로막지 않도록 무식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다 보니 돈이 한 동안 나를 뒤따라와주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돈이 나를 앞질러 갔고 결국 난 돈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난 돈을 잘 버는 능력과 돈을 잘 쓰는 능력은 있었지만 돈을 관리하고, 투자하는 능력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돈을 버는 족족히 그릇에 머물지 못하고 흘러가버렸다. 돈을 흥청망청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매년 수익은 3~4억 사이에서 머물렀고 사업 유지 비용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를 100% 재 투자했다. 첫해부터 3억을 넘겼기 때문에 나는 사업을 확장하면 10억을 금방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업을 확장하고 많은 일들을 해나가도 회사 수익은 정확히는 3억 3천에서 3억 8천만 원, 딱 그만큼에서 머물렀다. 내가 가진 돈 그릇의 한계점이었다.
주얼리 리테일 사업을 싱가포르에서 하고 있었고 코로나 19로 인해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 여파는 사업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그 시기를 견뎌낼 만큼 회사의 유동자산이 충분하지 못했다. 고정 지출은 정해져 있고, 수입이 없어 하루하루가 내 마음과 돈과의 전쟁이었다. 사업을 하던 즐거움은 직원 월급, 렌트비용 등을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 엄청난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이어졌다. 기본 유지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힘들고 괴로웠다. 이 시기에 남편의 20억 소송건이 동시에 겹치며 돈과의 전쟁으로 내 마음은 까만 숯덩이가 되었다.
돈과 행복 간의 관계는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 중 하나다. 지금까지 연구자들 사이에서 합의된 결론은 소득과 행복이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행복한 편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다. 다만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무한정 비례를 하는 가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Nature Human Behavior에 발표한 164개국에서 170만 명 이상을 표집 한 갤럽 세계 설문조사를 분석 자료 그리고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Sir Angus Stewart Deaton, 2015년 복지, 소비, 빈곤과 건강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미국 과학 학술원 (PNAS)에 소논문에서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의 이해를 더해준다. 20008년~2009년 미국 전역 45만 명을 대상으로 갤럽 설문조사를 토대로 낸 통계자료다.
분석 결과, 1인 기준 연 소득이 약 95.000달러 (한화 1억 정도) 일 때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 '만족점 (satiation point)'이 나타났다. 긍정적인 정서는 1인 연소득이 75.000 달러 (약 7천5백만 원) 일 때, 부정적 정서는 60.000 달러 (약 6천만 원) 일 때 나타났다. 이는 소득이 1억 정도라면 행복 만족도가 높고 1억 이상의 소득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추가적으로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점은 삶에 대한 평가에 대한 만족점이 1억을 넘어서게 되면, 삶에 대한 평가 점수가 오히려 떨어지는 '전환점 (turning point)' 효과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만족감 전환점 효과는 긍정적인 정서나 부정적 정서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환점 만족도 금액은 대체적으로 북유럽 (100,000달러), 북미 (105,000 달러), 호주/뉴질랜드 (125,000 달러), 동아시아 (110,000), 중동/북아프리카 (115,000) 등 10만 달러 이상에서 만족점을 나타냈다. 특이한 점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일수록 만족도 금액이 낮았다. 반면, 동유럽/발칸 반도 (45,000), 동남아시아 (70,000달러), 남미/캐리비안 (35,000 달러),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40,000달러) 국가들에서는 7만 달러 이하에서 만족점이 나타났다.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터린 (Easterlin)이다. '이스터린 역설'로 유명한 그는 상대적인 소득에 대해 정리를 해준다.
1. 국가 내에서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행복하다.
2. 하지만 국가 간 비교에서는 경제력에 따라 행복 수준이 달라지지 않았다.
3. 나라의 경제 발전이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했다. 소득은 상대적이다.
즉, 소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 상대적인 면이 행복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 월급 300만 원은 월급 200만 원 받는 친구를 볼 때는 더 많고, 또 다른 친구 월급 500만 원 보다는 적다.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며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해 그만큼의 행복을 자신의 수입으로부터 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력이 사람들의 행복 수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논리는 한국 경제가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면까지 완벽하게 설명해낸다. 하지만 정말 '행복 수준이 상대적인 수입'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일까?
이스터린을 반박하고 나선 사람은 빈 호벤 (Veenhoven)이라는 네덜란드 사회학자였다. 25년 동안 5편이 넘는 논문으로 이스터린의 역설을 반박했는데 '이스터린의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쓰기도 했다. 벤호벤은 많은 연구 자료를 통해 행복은 '상대적 수입'이라는 개념에 반박을 한다. 돈이 없어 하루에 밥을 두 끼 밖에 못 먹는 사람은 옆 사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빈곤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고픔은 옆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고 하루 세끼를 먹는 사람보다 더 많이 먹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삶에 대한 평가를 높이고 기여하는데 돈이 여유 있게 있을 때는 "돈, 돈, 돈" 거릴 필요가 없다. (돈이 충분해도 돈돈 돈한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생존에 집착해야 할 만큼 돈이 모자랄 때는 돈에 집착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먹고살기 힘들 때에는 수입이 늘면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다른 것들이 중요해진다. '사느냐 죽느냐'가 해결되고 나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때 '어떻게'를 좌우하는 것에는 그 사회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민주적인지 그리고 서로 신뢰하고 유대감을 느끼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미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은 돈은 전부가 아니며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기 쉽다.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물질주의적 성향이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돈만을 쫒는 마음을 경계해야 함은 맞다. 다만 행복은 마음의 문제라고만 치부하는 태도는 경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는 '돈이 전부는 아니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라는 공허한 위로나 배부른 소리가 필요한 게 아니다. 배고파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위로가 오히려 폭력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안다. 어떤 이는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돈을 못 버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택배기사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과도한 일을 맡아 과로사로 사망하는 것에 어느 누가 감히 '노력이 부족해서 돈을 못 번다'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보다 사회적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제도, 안정망이 받쳐줘야 하고 개인이 가진 재능과 노력을 기르고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전반적인 서포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년간 행복 수준이 다른 사람들을 비교 연구해온 줄리아 보엠 교수와 소냐 류보머스키 교수는 한결같은 연구 결과를 얻었다.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동년배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더 유익한 행동을 선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또 행복한 사람들은 더 오래 살고 결혼 생활을 더 오래 유지하며 질병에도 덜 걸리고 회복력도 더 좋다'라고 발표했다.
결론적으로는 돈을 가지고 있을 때도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한 사람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출발점이 어디가 되었든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서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 생존을 위해 경제적인 부분은 필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곳에만 너무 매몰되면 우리가 평소에 누를 수 있는 일상의 혜택을 놓친 채 인생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갈라놓는 명확한 1가지는 바로 "생존에만 집작 하다 보면 잃어버리는 일상의 기쁨'이라고 한다. 현재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에게 좀 더 친절하고 행복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여유와 지혜로움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내 사업은 싱가포르와 핀란드 두 곳에 기반이 되었고, 삶의 터전은 핀란드다. 나는 이 두 국가가 가진 사회적인 서포트 시스템으로 인하여 생존을 위협하는 시기 동안 숨구멍을 틔었고 다시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코로나로 인해 어느 국가가 타격을 안 받았겠냐만 싱가포르 역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싱가포르는 관광산업과 관련된 호텔, 레스토랑, 리테일 등 서비스 산업으로 얻는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나라다. 싱가포르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퍼지기 시작하자 바로 입국 문을 봉쇄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과 회사들에게 'Rental relief for SMEs'라는 4개월간 렌트비용을 내지 않고 살아낼 구호 기간을 준다. 자격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고, A4 용지 한 장에 요구하는 간단한 정보를 제출함으로써 허가가 났다. 렌트비용을 면제받는 시스템이 아니다. 하지만 수입원이 끊긴 상태에서 당장 숨이 막혀오는 부담감을 즉시 덜어줬고 리테일을 이커머스로 더 집중해 온라인 세 일로라도 수입원을 키워낼 시간적 여유를 벌어낼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는 남편의 소송건으로 매달 들어오던 천만 원 이상의 수입원이 0으로 바뀌었고 받아야 할 6천만 원 정도의 금액이 공중에 떠버렸다. 소송전에 한 회사에 투자를 했던 터라 여유 자금도 동결되었다. 몇 달간은 집에 있는 금덩이를 팔아 생활을 유지했지만 이 금덩이도 곧 바닥이 났다. 모든 생활비를 최소로 전환하고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코로나로 인해 핀란드와 한국을 연결하던 비즈니스 컨설팅 사업과 핀란드 국내 컨설팅이 함께 멈췄다. 핀란드 국가 역시 바로 회사와 개인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에게 구호 자금 신청을 받아 회사의 가치와 크기에 따라 1만 유로에서 10만 유로를 풀어줬다. 또한 컨설팅 같은 1인 서비스 기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3주마다 온라인 서류를 기반으로 심사를 하고 600유로 정도의 구호 자금도 풀어주었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바닥을 쳤던 그 상황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었다. 암담한 앞날이,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상황이 죽을 것 같이 괴로웠다. 나를 지탱해주던 것들이 한꺼번에 다 무너졌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서의 구조 기간, 핀란드에서의 구호 자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가족의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일어날 힘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의 위험을 견디고 일어서니 '어떻게 새롭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존의 위험을 겪는 경험은 단 한 번이면 족했고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매 순간 초조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불행한 삶을 사는데 필수 요건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생존을 위해 보내온 지난 6개월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생존 위협'을 받고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 있다. '얼마나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나'였고 그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살지 못했던 내 못난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잃버버림으로써 다시 찾은 작은 것에 느끼는 감사함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내 삶의 질과 행복감은 돈으로 풍족했던 어느 때보다 더 높았다. 내 일상 도처에서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순간의 기쁨과 행복이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온전히 지금을 느끼고 감사하며 내 마음은 미래에 대한 초조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마다 '돈'의 정의와 의미가 틀릴 것이다. 하지만 '돈'은 최종 목표가 아닌 내 삶에 있어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하나로 대한다면 그놈의 '돈'이 삶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막을 수는 있을 테다. 사업을 통해 돈에 호되게 당하기도 했고 그 기회로 내가 '돈'공부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시점이 되어주었다. 코로나가 함께 일어나 그 강도는 높았지만 한 번에 겪어내서 다행이다.
내게 있어 돈과 행복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고기에 더 맛깔나게 치는 양념장 같은 것이다. 함께 먹었을 때 고기의 맛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지만 양념이 없다고 고기의 값어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 맛있는 고기는 소금만 있어도 충분하다. 반대로 고기 없이 양념만 먹어서는 절대 풍 만감을 얻을 수 없고 항상 배가 고프고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풍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일상의 기쁨, 슬픔 모두 놓치지 않고 오늘을 온전히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