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행복에 관한 코리언 패러독스
대한민국 직장인 행복 지수(BIE: Blind Index of Employee Happiness)를 측정한 블라인드 지수라는 것이 있다. 퇴근 이후의 삶에서만 행복을 찾기엔 우리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개인 생활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인의 행복지수를 측정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블라인드 지수는 직장인들의 일과 개인의 삶 만족도, 직장 충성도와 함께 직무 만족에 높은 영향력을 가진 3개 요소 직무 만족도, 직장 내 관계 그리고 직장 문화의 상관관계를 심층 분석해 만든 지수다.
2020년 한국 노동연구원과 사이타마대 노성철 교수가 조사를 검수하고 결과를 분석한 블라인드 지수 조사는, 7만 2109명을 대상으로 시행되었고 대한민국 직장인의 행복지수 결과는 100점 만점에 47점으로 조사되었다. 한국 직장인 행복도는 작년 42점과 마찬가지로 50점을 넘지 못했다. 특히 작년 대비 이직 시도 비율이 급증했고 '1년 사이에 이직을 시도한 적이 있다'라는 비율이 전체 직장인의 50%를 넘었다.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71%에 달했다. 번아웃은 남성(67%)보다 여성(76%)이 더 많이 경험했으며, 2019년 65.7%에 대비, 2020년에 70.7%로 더 높아졌다. 업계별로 외식/체인, 교육/출판, 병원 업계의 번아웃 경험이 코로나 19 이후 회사 대응 만족도도 41점으로 낮게 나왔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직장인 행복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일에서 개인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인 '업무 의미 감'으로 드러났다.
조직 몰입감을 가지기 위해 직무, 관계, 문화의 3가지 영역에 걸친 11개 요인 가운데 '엄무 의미 감'은 복지나 워라밸보다 강력한 더 영향력을 미쳤다. 관계 요인에서는 '상사 관계'가, 문화 요인에서는 '복지'가 가장 중요한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더는 자신이 조직에 기여한다는 의식만으로는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다. 개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며, "각 기업의 HR 담당자들은 개인, 직무 일치 (Person-Job fit)를 높이는 방향으로 직무 설계 및 배정을 하는 데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있다."라고 한국 노동연구원 이정희 위원이 풀이했다.
이 연구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하고 나서부터 대부분은 퇴근 후의 삶의 만족도가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한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이다. 사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 총시간을 따져봐도 퇴근 후의 삶의 행복이 워라밸에 기여하는 정도는 '양적으로' 더 낮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느냐가 우리의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가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직업과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업무 의무감'을 가진다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관건은 하기 싫은 업무를 하며 원치 않은 회사에 다녀야 할 때다. 혹은 회사는 괜찮지만 업무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매일 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업무 의미 감은 보통 1년~2년 차인 사원도 신입과 같이 직무 만족도 내에서 업무 자신감이 가장 높을 시기다. 신입 시절엔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기대감으로 자신감과 열정이 뿜 뿜 나오는 시기다. 하지만 어제와 했던 업무와 큰 차이가 없는 오늘을 1년을 하고 나면 무기력에 빠지거나 자율적인 업무를 처리한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해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니 자연스럽게 직무 만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앞서 말한 대로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일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아무리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도 내가 성장하기 위해 지나쳐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어떤 '의미'라도 찾아내야 한다. 나도 과도기 같은 회사를 다녀야 할 시기가 있었다. 스페인 하면 자라 Zara가 대표적인 국민 브랜드다. 그 자라가 속한 Inditex Group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에 아주 조그만 도시 알 테이 쇼 (Arteixo)에 위치해 있다. 난 인디텍스 그룹에서 가장 럭셔리 브랜드 우떼르꿰 (Uterque)에서 6개월가량 일을 했었다. 옷 디자인만 9년째 하고 있을 시기 었고 가방 및 액세서리 디자인으로 전환을 하고 싶어 우떼르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근데 들어간 지 4주쯤 되었을 당시 옷 디자인 팀에 인원 충원이 필요했고, 디자인 다이렉터를 했었던 이력 때문에 내가 뽑혀서 온 디자인 팀으로 이전 했다. 비록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이었지만 옷 디자인 팀으로 다시 돌아가고 나니 더 이상 내 일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 회사를 들어갔던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옷이 아닌 가방과 액세서리 디자인 경험이었는데 그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전 회사에서 소품이 있어 너무나 지치게 많은 디자인을 뽑아냈던 터라 옷 디자인을 좀 쉬고 싶었다. 근데 다시 내가 옷 디자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것은 이번 회사에서는 '쉬엄쉬엄 한다'라고 생각하며 회사에서 제공하는 '스페인어 교실'도 듣고, 자라 브랜드에 있는 디자이너들과 교류를 하며 친구들을 만들며 다녔다. 지루했던 일상이 훨씬 활기로 채워졌고, 옷 디자인 역시 더 느린 패턴으로 디자인을 해도 괜찮았다. 물질적 혹은 경제적 대가를 위해 일을 한다는 의미도 한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 회사보다 더 많은 연봉으로 회사를 옮겼기 때문에 '좀 덜 부담스러운 속도로 일을 하며, 더 많이 돈을 받는다'라는 의미도 도움이 되었다.
배리 슈워츠, 캐니스 샤프 공저 '어떻게 일에서 만족을 얻는가?'에서 '몰입은 자기가 하는 활동에 빠져드는 경험이다. 그리고 의미 찾기는 자신이 한느 일을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하는 것으로, 내 일이 다른 이의 삶을 향상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셀리그먼은 진정한 행복은 몰입과 의미 찾기, 긍정적 감정의 조합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하는 직무는 다른 회사에서 디자인했던 것보다 훨씬 트렌디하고 새로운 시도를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럼과 동시에 내 동료들의 문제나 디자인 스펙 교정을 도와줄 수 있었다. 내가 하고자 했던 가방, 액세서리 디자인 대신 옷 디자인을 계속했지만 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디자인을 다 할 기회가 주어졌다.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면 어디든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동기가 널려 있었던 것이다.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가지는데 '너의 열정을 따르라'라는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우린 안다. 윌리엄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꿈의 직업을 마음에 품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다른 사람을 돕는, 잘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수입을 받더라도 일정 지점을 넘으면 행복하고, 슬프고, 스트레스를 느끼는지와는 관련이 없다. 스트레스를 피할 것을 찾는 대신, 행복에 도움이 되는 문맥,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도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힘든 일은 그 문맥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충분히 좋거나 나쁠 수 있다.
행복과학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 에드 디너 Ed Diener,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를 빼놓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는 '행복'이라는 모호한 개념 대신에 과학적 연구를 위해 '주관적인 안녕감 (Subjective well-being)이라는 정의를 고안해냈다. 1984년에 발표된 이 준관적인 안녕감에 대한 논문 이래로 심리학계 행복 연구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20여 년간 250여 편의 행복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주관적 안녕감\이란 자신의 삶에 대해 내리는 인지적, 정서적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디너 교수는 "행복의 결정적인 요인은 사회적 관계, 배움의 즐거움, 삶의 의미와 목적, 작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것을 인식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작은 것이라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특히 강조했다. 긍정적인 정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풍부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직장에서의 행복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자, 연구자들이 분석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음을 소개했다. 개인이 부여하는 의미, '업무 의미 감'을 통하든, 원만한 사회적 관계, 일하면서 얻는 배움의 즐거움, 삶의 의미와 목적, 작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것을 의식하는 태도, 등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떻게 '내가 의미를 부여하느냐'의 여부가 일과 라이프의 밸런스, '워라밸'을 이루는데 스스로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직장에서 얻는 직업 만족도와 행복감을 느끼는데 크나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경쟁 사회를 살아온 한국인은 행복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행복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인데도 순위를 매긴 후 남들보다 뒤처지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행복은 돈과 관계있다"라고 생각하는 지나친 물질 집착은 정말 강하다. 잉글하트의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물질주의는 미국인의 3배, 일본인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면서도 '한해 얼마나 벌면 행복할 것 같은가'(조선일보 한국 갤럽 글로벌 상점인 사이트가 전 세계 10개 나라 5190명을 조사한 '행복 여론조사')라는 질문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액 3400만~6900만 원을 대답한다. '돈과 행복'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한국들이 드러낸 세 가지 '코리언 패러독스' 중 하나다. 코리언 패러독스의 나머지 두 가지는 '한국인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삐딱하게 돈 번 인간은 정말 싫다'라고 얘기한다. 부모덕을 봤거나 부정부패로 치부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은 집 살 돈이 부족해서 고민이다. 그런데 집 가진 40대 50대 (부모)는 집값이 내려갈까 봐 전전긍긍이다.
23년 동안 해외에서 만난 한국 분들에게 "얼마를 벌면 행복하겠냐?"라고 물으면 다 같이 짜고 얘기한 듯 대답이 똑같다. "많이". "정확히 얼마를 버는 게 많이 버는 걸까요?" 그러면 "남들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남들은 누구를 말하는 거죠?"라고 물으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라 얘기하신다. 난 멈추지 않고 또 묻는다. "그럼 언제쯤 남들보다 많이 벌어 행복하실 것 같아요?" 그러면 "미래 언젠가"라고 대답하신다. 그럼 우리의 돈으로 받는 우리의 행복은 정체를 잘 알지 모르는 "누군가"보다, 얼마인지도 모르게 "더 많이" 벌어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의 언젠가"를 향해서 살고 있다는 것이란 말인가? 참 어렵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없이, 특정 대상을 집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와 경쟁을 하는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얼마를 벌고 싶은지 모르는 모호한 삶을 살고 있다면 행복도 돈도 함께 애매모호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행복한 직장 생활을 위해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를 반드시 묻고 대답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난 도대체 얼마를 벌면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