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번아웃 탈출기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한 직장인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회사 다니는 게 힘들어도 회사 밖보다는 덜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잘 버텨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와 일에 푹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 고생은 어딜 가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6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 단순히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숨이 늘어갔다. 마음도 답답했다. 내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슬펐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 걸까. 책도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고, 지인들의 조언도 구해봤다. 지난한 노력 끝에 두 가지 원인을 찾아냈다.
첫 번째는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것. 내 삶의 중심은 '김혜영'이 아닌 '평화방송'에 맞춰져 있었다.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건 좋았는데,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해서 들어온 회사였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야근이 일상이 됐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나의 소신이나 생각과는 다른 지시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나의 자존감은 소리 없이 무너져갔다.
두 번째는 Sweet Spot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 나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퍼스널 브랜더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숙 님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 내가 몰랐던 기준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의미있는 일이다. 실제로 의미를 잃은 채 기능적으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김인숙 님이 만든 문답집을 주문했다. 3시간 동안 꼼꼼히 써내려가면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꼈다.
원인은 찾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했다. 일단 데스크를 내려놓고 평기자로 돌아오면서 일은 많이 줄었다. 종종 칼퇴근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선불로 돈을 받고, 매일 이메일로 글을 보내 화제가 된 작가다. 그녀가 몇 개월 동안 쓴 글을 묶은 수필집인데, 너무 두꺼워서 솔직히 살까 말까 망설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길 잘했다. 며칠 만에 후루룩 읽었다. 재미있었다. 마음도 평온해졌다. 글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슬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녀를 잘 알게 됐고 친구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또 글을 통해 꿈을 펼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의 고민도 글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나에게 친숙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브런치를 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브런치에 실린 글도 여러 편 읽어봤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SNS와는 다른 진중함도 느껴졌다.
작가 신청을 하니, 글을 써서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심사를 위한 글이었지만 회사 이야기를 쓰고 싶진 않았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고시원에 살았던 이야기를 썼다. 며칠 전에 올린 '고시원의 추억'은 심사를 위해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이다.
아픈 추억을 공개하는 일이 쉽진 않았다. 그런데 조회수가 몇 십, 몇 백, 몇 천 건을 넘어서고 라이킷이 달리고 구독자가 생기면서 기분이 묘했다. 나의 삶이 담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됐다. 기사 조회수나 리포팅 조회수를 확인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나의 브런치가 어떤 글로 채워질지 나도 궁금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아직은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슬아 작가가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매일 글을 쓰는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 고충을 약간은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글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