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9개월 앵커 생존기
3년 전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국장이 보자고 했다. 국장은 나에게 라디오 시사프로 앵커를 맡아보라고 했다. 앵커를 맡고 있던 선배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과 함께...
당황스러웠다. <열린세상 오늘>은 평화방송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20년 가까이 쟁쟁한 선배들이 앵커를 해왔다. 내가 그런 프로그램의 앵커를 제안받다니. 감사한 일이었지만,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많았고, 쌓아야 할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나는 2017년 9월 18일부터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 앵커를 맡게 됐다.
요즘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하루종일 뉴스 달고 사는 분들 많으시죠.
뉴스 홍수 시대.
꼭 챙겨봐야 할 현안과 주목해야 할 뉴스.
이 시간을 통해 꼼꼼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또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인터뷰도
많이 전해드리겠습니다.
첫 방송 오프닝 멘트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담백하고 진솔하게 가기로 했다. 방송은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1시간이었지만, 준비엔 끝이 없었다. 나는 앵커와 CP를 같이 맡아 더 바빴다. 하루종일 뉴스를 챙겨 보고 아이템을 찾고 인터뷰를 섭외했다. 섭외 과정은 치열했다. 전화 한 통으로 섭외에 성공한 날은 드물었다. 전화를 걸면, 이미 다른 시사프로에서도 인터뷰를 요청한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이슈는 뻔하고, 이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전화하는 게 중요했다.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요청 받은 사람과는 밀당을 했다. 우리 방송에만 나와달라거나, 두 개 정도만 고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 프로가 선택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했지만, 시사프로 특성상 아무래도 정치인이 많았다. 정치인들은 질문지를 달라고 하면서 가끔 조건을 달았다. 꼭 물어봐 달라거나 절대 물어보지 말라거나. 그럴 때는 판단을 잘 해야 했다. 신의를 쌓기 위해 되도록 요청을 수용했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항의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물었다. 인터뷰 내용이 정국의 흐름을 바꾸거나 화제가 될 때는 성취감이 컸다.
아침 8시 생방송이 끝나면, 긴장이 풀려 노곤해졌다. 하지만 방송 만큼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 전문을 올리고 제목을 다는 일이다. 핵심을 찌르면서도 눈길이 가는 제목을 골라야 했다. 내가 뽑은 제목이 그대로 인용 보도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제목에 더 신경을 썼다.
출근길 청취자를 겨냥한 라디오 시사프로는 줄잡아 10개 남짓. 시선집중, 뉴스공장, 뉴스쇼, 최강시사, 출발 새아침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프로그램이 즐비하고 유명한 앵커들도 많았다. 그래서 모니터가 필수였다. 누가 출연했는지, 무슨 질문을 던졌는지, 조회수는 얼마나 나왔는지 매일 체크했다. 모니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내가 오늘 방송을 잘했구나, 오늘은 이런 게 부족했구나...
라디오 시사프로 앵커는 내게 힘든 도전이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회사에 도착하면, 밤사이 들어온 국제뉴스를 확인하고, 조간신문을 살펴보고, 앵커멘트를 다듬느라 바빴다. 아침 잠이 많은 내가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펑크를 내지 않은 점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럽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대부분 약자들, 그리고 우리 이웃들이다.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노동자, 익명을 요청한 미혼모,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건물이 무너져 놀란 학부모, 발리에 여행갔다가 화산 폭발로 발이 묶인 국민, 입시제도 변경에 대해 의견을 밝힌 중학생, 음주운전 사고로 친구를 잃은 청년, 사람의 생명을 구한 소방관...
앵커로서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렇게 전 세계를 출입처 삼아 1년 9개월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리고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에 따라 2019년 5월 31일 마지막 방송을 했다.
앵커로서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라디오 시사프로 앵커는 다시 생각해도 값지고 귀한 경험이었다.
PS. <열린세상 오늘>은 작년 6월 본사 개편에 따라 오후 5시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