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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Dec 05. 2020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직장인의 번아웃 탈출기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한 직장인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회사 다니는 게 힘들어도 회사 밖보다는 덜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잘 버텨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다니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와 일에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 잘할  있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정도 고생은 어딜 가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6년을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일하는  행복하지 않았다. 단순히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던  같다. 한숨이 늘어갔다. 마음도 답답했다. 내가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슬펐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 걸까. 책도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고, 지인들의 조언도 구해봤다. 지난한 노력 끝에 두 가지 원인을 찾아냈다.


첫 번째는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것. 내 삶의 중심은 '김혜영'이 아닌 '평화방송'에 맞춰져 있었다.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건 좋았는데,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원해서 들어온 회사였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야근이 일상이 됐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나의 소신이나 생각과는 다른 지시가 떨어질 때도 있었다. 나의 자존감은 소리 없이 무너져갔다.


두 번째는 Sweet Spot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 나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퍼스널 브랜더로 활동하고 있는 김인숙 님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 내가 몰랐던 기준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로 의미있는 일이다. 실제로 의미를 잃은 채 기능적으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김인숙 님이 만든 문답집을 주문했다. 3시간 동안 꼼꼼히 써내려가면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랜만에 행복감을 느꼈다.


Sweet Spot을 발견하게 해준 '뭐해먹고살지?' 문답집


원인은 찾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했다. 일단 데스크를 내려놓고 평기자로 돌아오면서 일은 많이 줄었다. 종종 칼퇴근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마음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게 되었다. 선불로 돈을 받고, 매일 이메일로 글을 보내 화제가 된 작가다. 그녀가 몇 개월 동안 쓴 글을 묶은 수필집인데, 너무 두꺼워서 솔직히 살까 말까 망설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길 잘했다. 며칠 만에 후루룩 읽었다. 재미있었다. 마음도 평온해졌다. 글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슬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녀를 잘 알게 됐고 친구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또 글을 통해 꿈을 펼쳐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의 고민도 글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나에게 친숙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브런치를 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브런치에 실린 글도 여러 편 읽어봤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SNS와는 다른 진중함도 느껴졌다.


작가 신청을 하니, 글을 써서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심사를 위한 글이었지만 회사 이야기를 쓰고 싶진 않았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고시원에 살았던 이야기를 썼다. 며칠 전에 올린 '고시원의 추억'은 심사를 위해 썼던 글을 다듬은 것이다.


아픈 추억을 공개하는 일이 쉽진 않았다. 그런데 조회수가 몇 십, 몇 백, 몇 천 건을 넘어서고 라이킷이 달리고 구독자가 생기면서 기분이 묘했다. 나의 삶이 담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됐다. 기사 조회수나 리포팅 조회수를 확인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나의 브런치가 어떤 글로 채워질지 나도 궁금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아직은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슬아 작가가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를 하면서 매일 글을 쓰는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그 고충을 약간은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글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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