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토로
소설을 쓰면서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쓸 말이 없었던 것이다. 학부 때부터 늘려 쓰기라면 자신 있었는데... 소설은 8만 자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보통은 8만 자를 중장편의 시작이라고 보는데 장편은 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싶었다.
문제점이 뭘까 생각해 보면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미흡했던 것 같다. 조지 밀러 감독이 퓨리오사를 만들면서 각 캐릭터들에 대한 소설을 배우들한테 전달했다고 하던데 그만한 열정과 치밀함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각 인물들의 서사는 있었지만 어떤 성장배경을 통해 어떤 가치관을 이루고 살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았고 이야기의 쓸모에 따라 캐릭터의 필요와 서사를 억지로 만들어 낸 경향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치밀한 구성과 캐릭터 구축에 반감이 든다. 서사 블록에 이야기를 가두어 버리니 영 구속되는 느낌이 들어서 참을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아니 에르노, 사강, 뒤라스 모두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할리우드적인 치밀함은 어떤 면에서 확실히 떨어지긴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이 있고 감성과 풍경이 있고 인생에 대한 처절한 철학이 있다.
이걸 쓰고 싶어서 흉내 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 아닌가. 나는 확실히 무딘 칼을 갖고 있다. 스스로 어떤 시선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다.
글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다만 연습은 할 것이다. 캐릭터에 풍부한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 세상만사에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생각도 계속해서 적어나갈 것이다. 일기가 곧 자양분이다. 일기를 통해 관점을 확인하고 생각은 정립된다.
연기를 할 때 선생님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자기중심적 사람이라 남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 외에는 쓸 거리가 없는 게 문제다.
글을 잘 쓰고 풍부한 양을 완수해 내려면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정보가 주입되어야 하며 삶에 대한 내재적 고찰과 외부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필수이다. 느끼지만 예술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서 남을 알아가고 세상을 배워간다. 나에게는 어떤 소통의 창구와도 비슷하다. 이걸 꿈꾸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 더 많았다.
오늘도 버스 정류장에서 결심 아닌 결심을 했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을 콱 부여잡고 내가 이런 글을 써야지라고 다짐하면서 꾸준히 쓰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꾸준히 쓰고 읽을 것. 그것은 보상과도 상관없는 내 자신의 꿈이고 지켜야 할 열정의 샘물이니까. 어떻게든 일구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페소아와 카프카를 생각한다. 퇴근을 하고 꾸준히 써 내려갔던 글이 지금은 어떤 위치에 있는 글인가? 사랑받는 글이 되는 건 누구나의 꿈이고 나의 꿈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계속해서 꾸준히 쓰고 싶다.
그 언젠가를 기약하면서 마침내 꼭 올 그 언젠가를 위하여!
p.s 불편하더라도 또렷한 말과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