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현 Jun 17. 2024

쉬운 좌절은 글쓴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소설 하나를 완성해 보겠다고 라이터 스쿨에 도전했다. 결과는 보기 좋게 떨어짐. 입이 방정이라고 당장 다음 주부터 서울대 갈 것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부끄럽다.  듣기 싫은 변명을 하나 하자면 그 비싼 스쿨에 많이 지원하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안일한 시놉을 써서 안일하게 도전했다.

부끄럽다. 과정은 부끄럽지 않다. 그렇게라도 써서 낸 나 자신이 대견하다. 다만 떨어진 결과는 매우 부끄럽다. 글에 꽤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라는 절망감이 물밀 듯이 사무실에서 몰려왔다.

자괴감.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그것!

오늘따라 현업 부서는 왜 이렇게 재촉에 짜증인지. 결국 수화기를 들고 손을 벌벌 떨면서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언제까지 변호사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는데 그나마 자부심이었던 글쓰기까지 '넌 안돼'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쉽게 우울해진다.

쉽게 우울해지는 내 자신이 또 싫어진다.

아래와 같은 무한한 굴레에 빠져 있다.


난 못해--> 넌 못해 ---> 와 진짜 못해 ---> 난 쓸모없어 ---> 그래 넌 쓸모없어 ---> 내 자신이 싫어---> 난 못해 --> 그래 넌 못해 ---> 와 진짜 못해 ---> 역시 못해 ---> 잘하는 게 뭐야? ---> 난 아무것도 아냐.


위 굴레, 우울증과 자기 검열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매주 거행하는 종교적 의식 마냥 매주 그리고 자주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지겨워! 생의 굴레는 왜 이렇게 지겹단 말인가. 늘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지겹게 돌고 도는 굴레 같은 생각.

그래도 공격에 취약해지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그리고 최근 들어 많이 나아졌다는 진단을 들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1.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행복도 없으며

2.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상존하며

3. 세상은 균형이 있어서 꼭 안되리란 법도 꼭 잘되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는 것이다.


깨달았지만 아직 초연해지지 않았다. 대장장이 마냥 칼을 갈고 닦으면서 우울감을 영원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너무 힘들 땐 약의 도움을 구한다. 오늘은 아마 오랜만에 약을 먹고 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결심을 하기도 했다. 다시 아침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 잠이라는 관성을 버리고 나를 살린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소설도 더 치열하고 열심히 써야겠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진정으로 작가라면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쉽사리 얻어지지 않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가. 쉽게 이루어지면 또다시 허무의 늪에 빠질 것이며 소중하게 지키지 못하고 금방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 의미로 꿈은 크면 클수록 좋고 이루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인생에 더욱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실망,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큰 꿈을 지켜낼 것이다. 젠장! 털고 일어나야지.


되는 일이 하나 없는 것 같은 하루에도 열심히 일을 했고 야근을 했으며 테니스도 쳤고 샐러드도 먹었고 저녁에 글도 쓰고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책도 읽었다. 다음주 생일 파티를 기획하면서 사람들을 하나씩 초대하고 소품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줄 선물도 다듬어 놓았다. 꽤 실망스러운 하루가 꽤 괜찮은 하루로 탈바꿈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실망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완성하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지, 자존감, 긍정성 이것만큼은 그 어떤 도둑도 훔칠 수 없는 것 아닌가.


대애충 노력한다. 테니스를 엄청 잘 치지도 생일파티도 엄청 잘 준비하지도 글도 엄청 잘 쓰지도 않지만 하긴 한다. 대애충. 대애충 써서 원하는 결과를 쉽게 얻지 못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인이 배겨서 프로가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 알 수 없이 불끈거리는 의지 이 두 개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지.

다만 나는 계속해서 할 뿐이다.


p.s 소설 하나를 완성했다. 지루한 수정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뿌듯하다. 곧 이 글이 세상에 나오길 고대하며!

작가의 이전글 건조함 보다는 척척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