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2
다시 일기를 쓰기로 결심하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얼마만인가!
일기를 쓰는 게 부담스러운 때가 있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걸 끄집어내면 무너질 것만 같은 때. 그때는 잠시 일기를 멈추고 소설을 쓴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로 도피한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쓸 수 없는 말을 남의 말을 빌어 실컷 쏟아낸다. 연기를 배울 때와 같은 시원함이 있다. 차마 내 입으로 분출할 수 없었던 내 이야기 그 속에 오롯이 담긴 야성의 감정들. 그것을 남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말은 보다 정확해지고 감정은 보다 누그러진다.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치료다. 힘든 나 자신을 살린 건 약도 운동도 아니라 아침 일찍 일어나 쏟아내듯 쓴 글이었다. 그 속엔 감정, 이야기 형식도 정제되지 않은 채로 산발되어 있었지만 매일 쓴다는 자부심이 나를 살렸다.
사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많다. 쓰기 싫은 이야기들이 더 많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이야기를 삼킨 이유는 꺼내는 순간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직면해야 글이 더 좋아진다는 신화가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어느 순간 정신적 건강을 위해 적당한 외면을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힘이 생기면 이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리라는 것도 직감하고 안다. 다만 서두르고 싶지 않다. 에너지가 보충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모든 것이 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나를 위한 여유를 줄 수 있다.
각박해지거나 건조해지고 싶지 않다. 차라리 적당히 물기 있는 척척함을 선호한다.지나치게 현실만 살아가면 대학, 취업, 결혼의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것들을 어느 정도 이루면 목표를 다 이뤘다고 생각하며 허탈해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꿈을 꿀 만한 것은 얼마나 더 많은가.(더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서서히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겠지?)
혼자서도 충분히 뚜렷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뚜렷한 생각과 가치관, 행복에 대한 명확한 사고 그리고 그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내면의 힘. 이 모든 걸 요약하자면 행복을 찾는 능력을 갖고 싶은 게 아닐까?
요즘 자주 혼자인 삶을 상상해본다. 상대에게 느꼈던 수많은 실망감과 아픔 그리고 어그러진 관계들을 생각하면 혼자 살아가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직 일말의 희망이 가슴속에 남아서 그것이 날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 희망마저 완전히 부서질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완전히 부서지는 것은 아직 많이 두렵다. 가슴 깊은 곳에는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주길, 사랑을 나눌 수 있길 갈망하고 소망하고 있다. 아직 이 모든 기대를 버린 것은 아니다.
자유와 사랑. 난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 아니면 이 두 개는 양립할 수 있는가? 여러 고민이 들지만 결국 운명대로 흘러갈 것이다. 인연을 만드는 건 내 힘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역학이니까. 다만 앞에서는 뚜렷이 살기를 희망하고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으면서 이제 와서 운명론자라고 밝히는 코미디는 참을 수 없이 내 철학이 얼마나 가벼운지 반증하는 것 같아 조금 웃기다. 모순이야말로 인생이지.
모순을 사랑한다. 비논리는 더 좋다. 모든 게 인과관계로만 이루어진다면 문학도 없고 철학도 없고 삶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