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문경과 무슨 인연이 있는 걸까..?

by 최단비

작년, 내 나이는 만 36세를 넘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더욱 실감이 나지 않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곤 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가슴속에서 꿈틀대며 사라지지 않는 꿈 때문에 종종 나도 내 나이가 헷갈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은 변하기 마련일 텐데, 희한하게도 펼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은 가시질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간에, 내 안의 품은 속삭임은 지난 20여 년을 쉬지 않고 나와 함께 호흡해 주었고, 때문에 강물처럼 흘러버린 내 나이가 가끔 믿기지 않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종종 우리 집 근처에 있던 작은 빵가게를 지나쳐 가며 그곳에서 색색의 영롱한 잼이 가득 든 푸딩 파이를 굽는 상상을 했다. 볕이 잘 들고 아담해서 지나갈 때마다 매번 눈길이 갔던 곳.


'빨간, 노랑, 초록.. 이름은 신호등 파이라고 붙여야지. 어떤 앞치마를 입고 있으면 좋을까?..'


소꿉놀이하는 아이처럼, 나는 십 대 때 종종 빵을 굽고 가게를 여는 상상을 했다. 사실 그 외에도 나에겐 꿈이 참 많았다.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아이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할 때도 많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삼십 대 중반까지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거의 20여 년 만에 정말로 내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그것도 아무런 연고도 없던 문경에다..! (이 나이쯤 되니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에 한 표.)


문경을 처음 방문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가은읍에 위치한 정토수련원이라는 곳으로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서 백일출가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딱 100일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갑작스레 터진 집안의 큰 사건으로 나는 8개월을 더 수련원에서 머물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가 백일출가 같다. 딱 서른 중반이 되었을 무렵, 도저히 내 인생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었다. 어쩜 사람과의 인연도 악연만 골라서 만나게 되던지.. 오히려 피하지 말고 그냥 막무가내로 살아도 그것보다 나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나의 이십 대 삼십 대는 너무 괴로워서 눈물 나게 힘이 들었다.


이젠 아무런 연고가 없는 문경이라고 하기엔 꽤 많은 인연들이 얽혀 있고, 내 영혼이 다시 태어나서 새롭게 살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곳이기에, 나는 문경을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고 있다.



KakaoTalk_20260109_151244871_17.jpg 간판을 철거하고 선팅지를 제거한 가게 모습.

작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발품을 팔면서 가게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당장 수중에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좀 더 기다려야 했다. 10월 말이면 3년간 모아 온 적금이 만기가 되는 날이라서 때에 맞춰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면 바로 가게를 차릴 수 있도록 집에선 레시피 계발을 하고, 주방 인테리어를 구상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해서 계약을 하고 나니, 예상외로 드는 비용과 시간 때문에 발품을 더 팔아야 했고, 오픈날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역시 실전으로 배우는 건 다르군.. 하면서 모든 것을 공부 삼아 차근차근해나갔고, 덕분에 고생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들도 돌이켜보니 참 뿌듯하게 느껴지는 거 같다.



KakaoTalk_20260109_151244871.jpg 상가계약 첫날, 11월 14일.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직접 페인트칠도 해보고, 주방 도면도 그려보고(다시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고..), 주방 집기와 가전제품도 알아보고, 영업허가증도 발급하고, 위생교육도 받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페키징도 구상하고.. 너무나 할 게 많아서 나의 뇌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곤 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직장을 다닐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밤늦게까지 일하고, 하루 종일 일 생각만 했지만, 내 삶에 대한 불평불만이 없는 상태였다. 몸은 고되고, 잠도 많이 잘 수 없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의욕이 점점 넘쳐흐르고 있었다.



KakaoTalk_20260109_151244871_19.jpg 시행착오를 거치며 여러 번 수정한 가게 도면도. 셀프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도면도 그리기는 필수였다.

월급이라는 안전 울타리를 걷어차고, 내 삶을 온전히 실험해 보는 생존게임에 투입된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걸 구상하는 재미에 몰두하며 가게 오픈준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내 삶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이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그러한 마음상태가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미 꿈을 향해서 살고 있으니까, 언제 죽어도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 큰 힘이 되었던 거 같다. (친구는 이왕 죽을 거 개업은 하고 죽으라고 해서 나름 몸 조심하며 오픈준비를 했다)



KakaoTalk_20260109_151244871_08.jpg 가스공사를 하기 전에 가구와 집기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실측을 하고 있다.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다)

나중에 정말로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게 된다면, 집을 지어서 인테리어도 하고, 농막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고..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으니 이런 고생은 값진 스승처럼 느껴질 만도 하구나.. 내가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하니 고생한다는(손해 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속 괴로움도 없이 몰두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매일매일 조금씩 변하는 공간들을 펼쳐놓으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실감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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