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엄마의 미국 유학 일기
1970년대는 미국의 인권운동이 폭발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각종 Ethnic Studies (Black Studies, Asian American Studies)가 대학의 전공으로 처음 생겨났고, 페미니즘, LGBT들도 좀 더 공식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장애인의 인권운동 역시 이 시기에 활발히 일어나서 1975년부터 장애인들이 공립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기 시작해서 1990년에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FAPE (Free Appropriate Public Education), LRE (Least Restrictive Environment)를 뼈대로 한 법안인 IDEA (Individual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가 통과된다.
간단히 말하면, 1975년 이전에는 미국도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고, 1975년부터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힘들게 다녔으나, 1990년부터는 이 학생들이 좀 더 개별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FAPE은 우선 돈을 따로 들이지 않고 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인데, 저 중간에 들어있는 appropriate education부분이 다소 명확하지 않아 늘 소송의 쟁점이 되곤 한다. 과연 적절한 교육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LRE는 보통 통합교육 (Inclusion)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역시 least restrictive가 의미하는 “최소한으로 제한적인” 혹은 “최대한 많은 것을 제공하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늘 분분하고 해석도 다양하다.
이에 비해 IEP는 비교적 명확하게 어느 주에서나 어느 district에서나 반드시 실행하는 중요한 과정이자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장애를 가진 학생의 현재 수준, 장점, 문제점들이 기록되어있고, 1년 동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하게 될지에 대한 학습 목표들이 기록된다. 문서의 이름 (IEP)이 알려주듯이 개별화된 (Individualized) 학습 계획서이고 교과 과목에 대한 목표도 있지만 사회성 발달이나 일생 생활에 대한 기술들도 목표로 포함된다. 이 문서의 뒷부분에는 학교에서 어떤 서비스와 도움으로 이 학생이 목표를 이루어 줄 것인지, 어떤 평가를 받을 건지 등등이 기재되어있는데 여기에 문서화된 부분은 학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IEP의 중요성은 아무리 중요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교육적 목표를 의논하기 위해 매년 갖게 되는 모임을 IEP 미팅이라고 부르는데 매년 하는 일반 미팅이 있고 3년에 한 번씩 하는 좀 더 정밀하고 포괄적인 triennial IEP 미팅이 있다. IEP 미팅은 보통 school psychologist (학교 심리상담사가 적절한 표현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일반 학급 선생님, 특수교육 선생님, district에서 행정 하시는 분, 언어 치료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가 참여하고, triennial IEP 미팅도 비슷한 구성인원이지만, 필요에 따라 district에서 좀 더 여러 명의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학부모는 이 미팅에서 모든 구성원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원칙적으로 학교는 학부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물론 짐작은 하겠지만 이것은 원칙일 뿐, 현실 IEP 미팅에서는 학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워낙 학부모가 이 미팅에서 기를 펴지 못하다 보니, 학부모는 주변 서비스 기관에서 좀 더 전문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들을 advocate으로 데리고 함께 미팅에 참여할 수가 있다.
사실 IEP와 통합교육(Inclusion)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데, 이 주제는 책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로 해석도 다양하고 논란도 심한 주제이므로 일반적인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나의 첫 IEP미팅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일단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나는 이 미팅에서 무엇인가가 결정된다는 것이 너무 걱정이 되어, 지금은 우리 대학의 강사이지만 그 당시는 아직 박사 과정에 있던 나탈리의 도움으로 Alpha라는 장애인 지원 센터에서 학부모 지원을 해주는 제니퍼와 함께 미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단 첫 IEP미팅은 무조건 내 편을 좀 많이 데려가는 것이 좋다. 일단 학교의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선생님들, district직원, 교장선생님 사이에 홀로 들어가서 내 소신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 IEP에서는 꽤 오랜 시간 평가 결과를 말해준다. school psychologist는 보통 친절하기 마련인데, 나의 첫 미팅에도 school psychologist는 내 마음이 상할까 봐 학생의 언어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완전한 검사가 어렵고, 측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을 수 있으니 우리는 이 결과를 매우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된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했었다. 사실 장애진단을 받은 초반에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의 아이에 대한 평가가 되도록이면 잘 나와서 나의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들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론 부모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진단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수록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사실 진단의 결과가 나쁜 것에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진단이 어떻게 나오든, 내가 보는 내 아이는 매일 집에서 보는 그 아이 아니던가… 게다가 나의 아이는 늘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처음에는 엄청 심각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진단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사실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았다.
첫 미팅의 수업 목표들은 내 아이가 빨리 간단한 영어 표현을 배우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나는 그 목표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내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다만, 그들은 현재 평가를 진행한 학교는 이 아이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이 없으니 다른 학교로 배정을 하고, 스쿨버스를 제공해 줄 테니 중증 자폐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로 옮기는 것이 어떤가에 대한 나의 의사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중증 자폐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가 사실 이 동네에서 훨씬 좋은 학교였기 때문에 나는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내심 좋아하고 있었고, 그다음 주에 중증 자폐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에서 다시 한번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중에 가장 재밌는 것은 “우리 학교는 100퍼센트 통합교육을 실행합니다”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 아이의 IEP에는 70퍼센트는 특수학급, 30퍼센트는 일반학급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미국의 통합교육에 대해 너무나도 관심이 많던 나는 당연히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지금은 적응 시기라 그렇고 결국에는 100퍼센트 통합교육을 하게 됩니다”였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고 나로서는 정말 하루 이틀 볼 사람도 아닌데 교육자들이 이렇게 대 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고 이런 문화는 지금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특수학급은 크게 두 반이었는데 한 반은 킨더에서 2학견, 다른 반은 3-6학년의 아이들이 지내는 반이었다. 나의 아이는 1학년만 4달 다니다 미국에 온 것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어차피 개별 교육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기 때문에 학년이 큰 의미가 없고, 같은 또래와 크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겨, 본인의 나이 때로 3학년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의 근성 없음을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이 아이가 도저히 처음부터 8시-3시에 학교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12월은 3주만 8시-12시로 반만 수업을 듣기로 하고, 1월부터 정식으로 학교 수업을 다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