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over
항공기 조종사는 항공안전법에 의거 일일 최대 비행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통, 두 명의 조종사가 비행하는 항공기는 일 최대 8시간을 비행할 수 있어서, 편도 4시간이 넘어가는 항로의 경우 보통 레이오버를 하게 된다. 레이오버는 목적지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휴식시간을 보장받고, 돌아오는 일정까지 머무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다낭은 특별했다. 민항 조종사로서 첫 레이오버이자, 개인적으로 처음 와보는지라 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루키 조종사인 나에게는 비행에 대한 준비도 만만찮았다. 특히, 동남아 지역의 악명 높은 영어발음은 선배들에게 받은 녹음파일을 아무리 반복해 봐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수십 번 듣고, 예상되는 용어들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야간에 출발하였고,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망망대해를 비행한다는 것이 외로울 것만 같이 느껴졌으나, 생각보다 많은 수의 국내 여러 항공사들이 위아래 앞뒤로 줄지어 동남아로 향했고,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국인 특유의 영어 발음과 익숙한 Callsign(호출부호)이 쉴 새 없이 들려와 동지(?)들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별이 보이는 하늘을 한참 날아가다 보니, 학창 시절 읽었던 생택쥐페리의 야간비행에서, 파비앵이 열어준 하늘길을 직접 날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당시 야간비행은 상당히 모험적인 도전이었다고 한다. 리비에르와 파비앵의 수많은 마찰과 고뇌, 외로움 속 독백과 그들의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야간비행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기술의 발달로 그 시절 야간비행과 비교하자면, 현재는 훨씬 안전하게 밤하늘을 날 수 있다. 잠시나마 그 시절 선배 조종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기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길 것만 같았던 네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날이었는데 항로상 기류도 좋아 승객들을 편하게 모실 수 있었다. 일본, 대만, 중국 공역을 지나 멀리 베트남의 해변의 불빛이 보였다. 다낭공항에 접근하기 위한 준비로 조종실이 분주해졌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관제사들의 발음이 알아들을만했고, 공항으로 유도받아 안전하게 착륙했다. 예보보다 기상이 좋아서 접근하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느꼈던 것은, 필자는 동남아 특유의 습기를 좋아하는데 기분 좋은 습기를 느끼기도 전에, 이곳이 정녕.. 일명 ‘경기도 다낭시’의 위엄인가 싶었다. 여기저기 한국어가 들려왔고 조금만 둘러보면 여기저기 심심찮게 한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공항 앞에 호텔까지 픽업해 주는 벤이 크루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기장님과 승무원들과 함께 숙소로 이동하였다. 첫 레이오버였던 나는 마냥 즐거웠다. 걱정했던 동남아의 ATC는 생각보다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절차는 예상하고 준비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호텔 룸 컨디션은 예상보다 좋았고, 얼른 짐만 풀어놓고 로비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젠 말로만 듣던 ‘Landing beer‘를 마시러 갈 차례.
현지시간으로 12시가 다된 시점에 도착한지라, 운영하는 식당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었다. 기장님을 따라 호텔 근처의 편의점으로 갔는데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편의점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예전에 가봤던 일본이나 대만의 선진(?) 편의점 문화와도 느낌이 달랐다. 편의점 크기도 컸고, 안팎으로 테이블과 좌석이 꽤나 있어, ‘편맥’하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음악과 조명이 함께했고, 한편에는 수제소시지를 굽는 상인도 있었다. 평일임에도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현지의 젊은 인파가 밤을 즐기고 있었고, 약간은 다른 생김새를 한 우리는 그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첫 레이오버를 축하받으며 한참을 먹고 떠들다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올 때 즈음, 이게 내가 꿈에 그리던 장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은 성공적이었고, 고생했던 크루들과 함께 맥주잔을 부딪히며 짧지만 내일 하루 정도는 맘 편히 쉴 수 있다는 해방감과 안도감. 길지 않은 레이오버지만 이 순간을 즐길 자격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 시내를 돌아보고 싶어 나섰다. 요즘은 어플이 잘 되어있어, 한국에서 택시 부르듯이 폰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었고 결재까지 가능했다. 원했던 건, 반미 한 조각과 코코넛 커피 한 잔 정도. 이동하여 환전을 하고, 친한 선배조종사 형님으로부터 소개받은 맛집으로 향했다. 반미 맛집이었는데, 찾아보니 계란반미가 맛있다 하여 주문했는데, 고수를 추가하겠냐고 물어보길래 많이 넣어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고수의 맛을 잘 몰랐었다. 대만으로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으러 갈 일이 있었는데, 대만도 향신료의 나라인지라,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현지의 음식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고, 입맛에 맞지 않는 고수를 억지(?)로 몇 번 먹다 보니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주문한 반미가 나왔는데, 똑같이 생긴 빵의 맛이 어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보통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바게트 빵은 식감이 질기고 딱딱하기 마련인데, 생긴 건 같으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으며, 계란과 소스, 고수가 잘 어우러진 빵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유명한 콩커피 매장에서 코코넛 커피를 한 잔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쌉싸름한 커피와 달달하고 부드러운 코코넛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다낭에도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꽤 큰 강이 흐르는데, 재미있게도 이 강의 이름도 ‘한 강(Hàn River)’이다. 그렇게 카페 2층에 앉아 창문너머로 보이는 한강을 보며,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사실, 근무한 지 몇 년 된 기성 조종사들에게는 질려버린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더 이상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유명한 카페를 찾아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한 법이고,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국내로 돌아오는 Quick turn 비행만 경험했던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었다. 특히, 조종사가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를 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Layover 동안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과 함께 글을 쓰는 것.
어쩌면 2~3년, 혹은 그보다 짧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이러한 풍경과 거리, 사람들과 냄새까지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웬만하면 오겠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종종 내가 좋아했던 Spot(장소)들에 가서, 사색을 즐기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자주 들러 익숙해질지언정, 그래도 잠시나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앞에 생각을 정리하곤 하면, 다시금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었다. 이 순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고 하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일을 최대한 즐길 것이고, 이 순간을 꿈꿨던 나의 어린 열정에 보답할 수 있게 안전하게 비행하고, 열심히 글을 쓸 예정이다.
밤비행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정이었다. 동중국해를 지나는 항로가 복잡하여 항상 1~2시간 정도는 지연되는 것이 일상이었고, 우리는 예정된 이륙허가시간에 맞춰 비행을 준비하고, 이륙했다. 돌아가는 여정은 다낭행 보다 약간 더 길었는데, 고도가 높은 항로를 통과할 때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1~2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에서도 20~30분이 차이나기도 한다. 우리의 여정은 비행시간만 4시간 30분이 넘는 일정이었다. 돌아왔던 항로를 지나 대만 상공을 통과할 때 즈음, 동쪽에서 동이 터올랐다.
밤을 새워 비행하며 돌아오는 길이라 약간의 피곤함도 있었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함께했다. 37,000피트(약 11km) 상공에서의 해돋이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유난히도 하늘에서 보는 풍경을 좋아했던 나는 잠시 본업을 잊고 11킬로 상공에서의 해돋이를 감상했다. 그렇게 대만영공을 통과하여, 제주도가 보일 때 즈음, 한국 관제공역으로 들어왔고, 다 같은 영어라 하여도 국적에 따라 그 특색이 있는데, 한국인 관제사분의 영어로 ‘Good morning’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교신을 하니, 드디어 한국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 목소리가 여간 반가울 수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5일간의 여정이 끝났다. 앞으로 일상이 될 미래를 잠시 체험하고 온 기분이었다.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