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젓가락 십자가를 꽂아 주었다.
처마 밑에 조용히 누워 있는 그것을 처음 본 건, 어른들 일 나가시고 나 혼자 집에 남겨진 정오쯤이었나.
그날도 송홧가루 누렇게 쌓인 툇마루를 걸레질하고 토방 앞을 물청소하려던 참이었다.
방금 막 툇마루 끝을 훑고 지나간 걸레의 물길이 색을 달리하며 번져나가던 그때,
시멘트 발린 토방 위에 낯선 검은 것이, 제비의 진흙 둥지 바로 아래에 조그맣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둥지를 올려다보았고, 그 안에는 여지없이 제비 새끼들이 가득 차 있었다.
노란 부리에 힘껏 소리를 얹어 찌르르 찌르르- 울어댔고, 서로의 날갯짓에 밀려 자리싸움이라도 하는 듯
둥지 안은 복작거렸다.
둥지와 토방을 번갈아 보며 왜 한 마리만 이 아래로 떨어졌을까 생각했다.
저 좁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가 형제들에게 밀려 떨어져 버린 걸까.
형제자매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찌르르 울는 것들은 무언가 아는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인지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더 높이 울어대는 듯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두 번이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어보니, 엄마제비 포함 여섯 마리였고, 하나가 비어있었다.
아빠제비는 또 날벌레를 구하러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처마 밑으로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작은 제비 한 마리가 날개를 접은 채로 양 발을 뻗고 땅에 누워 있었다.
달걀하나 보다 작고, 제비라기보단 검은 깃털의 씨앗 같은 모양이었다. 울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시멘트바닥을 베고 누워 있는 모습이 시간과 함께 굳은 듯했다. 그 주위로는 늘 그렇듯 자기들의 배설물이 얼룩덜룩하게 묻어있었고.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에 주춤하다가, 밭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부르러 뛰어갔다.
저기 저 땅바닥에 제비 새끼 한 마리가 있는데 이상하다고.
할아버지는 멈칫하시더니 알았다며 끄덕이셨고, 그제야 성가시지 않게 밭이랑을 비켜서 밭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빗물이 가득 담긴 큰 고무대야에 손을 대충 씻으시고는 앞서 걷는 할아버지의 뒤짐 뒤에 숨어, 집으로 돌아왔다.
제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있었다.
“어허이”
안타까운 탄식이 섞인 한 마디를 하시고는, 제비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치워야 된다며, 입 다문 새끼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셨다. 그리고 화단 가장자리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얌전히 눕히셨다.
흙을 덮고 몇 번 손바닥으로 눌러 다지시던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무언가가 죽으면 땅에 묻힌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며칠간 그 자리를 오가며 들여다보았는데 , 그걸 본 할머니가 나무젓가락을 주시며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 줘도 된다고 하셨다. 젓가락을 반으로 가르고 노란 고무줄로 엮어 작은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걸 작고 봉긋하게 솟은 흙더미에 위에 꽂고, 작은 돌멩이들을 눌러 고정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좋은 데로 가라며 기도했다. 십자가가 서 있던 그 자리는, 화단 한쪽.
해마다 노란 수선화와 흰 백합이 피는 양지바른 옆 자리었다.
아빠 제비는 알지 못했는지, 둥지 안에 남은 새끼들과 북적였지만, 나는 연미복도 못 입어 본 채 땅속에 누운 한 마리가 더 자주 떠올랐다. 화단 너머 합승이 지나가는 걸 보러 다닐 때도, 괜히 그쪽은 밟지 않으려 돌아서 다녔고, 꽃보다 먼저 땅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온전히 성장하여 말도 없이 떠나갔던 제비 가족이 아니라, 조용히 묻힌 그 한 마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아마 그 여름, 처음으로 '떠남'이란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물가에 별처럼 피어있는 수선화를 볼 때면, 그 곁에 있던 작은 흙더미가 떠오른다.
나이가 들수록, 시작보다는 끝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는 요즘엔 더.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살포시 내밀어 봅니다.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원곡 George Be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