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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Oct 30. 2022

두보의 오언절구를 흉내 내 볼까나

두보의 오언율시 '강벽조유백'

날마다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집의 서재에서 노트북과 씨름하다가 오래간만에 지인들과 1박 2일 도시 밖으로 힐링하러 갔다. 모임 중에 처음 만난 여성 CEO가 요식업으로 성공한 한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나랑 한 살 언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나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요즘이야 뭐 고향이 크게 중요하나요?" 하고 시크한 듯 대답한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요즘 세대는 고향에서 쭉 살아갈 수 없는 시대라면서 마치 우리가 엄청 어른인 것처럼 이야기를 해간다. ㅎㅎ


겉으로는 웃었지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냥 무심코 나오는 '고향'이라는 단어에 온 몸이 순간적으로 미세한 반응을 한다. 사실 어제 KTX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 휴대폰으로 우연히 두보의 오언율시 "강벽조유백(江碧鳥逾白)"를 보았는데 마치 이 순간을 예고한 것 같아 감정이 묘해진다.


강벽조유백 (江碧鳥逾白)

강물이 파라니 새가 더욱 희게 보이고

산청화욕연(山靑花欲燃)

푸른 산의 꽃이 타는 듯이 붉구나

금춘간우과(今春看又過)

금년 봄은 덧없이 지나가니

하일시귀년(何日是年)

언제나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오.


이 시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甫)가 <안록산의 난>에 피난을 가서 지은 오언율시다. 오언절구라고도 한다. 절구(绝句)는 중국 시가 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두보의 <율시>로서 글자의 배열, 음률의 조화 및 대구 등 최고의 형식미를 갖춘 근체시다. 기승전결의 구로 만들어지고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절구 두 종류가 있다.


강물이 파라니 새가 더욱 희게 보이고, 봄의 푸른 산에 꽃들이 붉게 타건만 고향으로 갈 날은 기약 없는 신세를 기승전결로 너무나 잘 드러난다. 해서 나도 모방을 해본다.


제목:   만추회상향 (晚秋回想鄕) 


리가구료 (久了)

고향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을고

산추엽욕연 (山秋叶欲燃)

가을산에 단풍이 붉게 타네

금추안연 (今秋安然)

올가을도  무탈하게 보내건만

하일시귀년 (何日是歸年)

언제나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오


처음으로 오언절구 한시를 지어보니 五言으로 짓는 것이 쉽지않다. 한자가 표의문자여서 한 글자로도 뜻을 나타낼 수 있어서 좋다지만, 정말 한참을 끄적거려서 완성했다. 원래 고전문에 쓰이는 문법도 현대중국어와 다른데 옳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漢詩로 부모형제를 그리며, 고향을 그리며 나는 올가을도 값지게 보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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