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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Oct 30. 2022

초보 방과 후 강사의 희로애락

5. "선생님 그 말은 성차별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


일주일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들과 만나는 목요일은 솔직히 나에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어김없이 매주 돌아온다.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젠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나와 아이들의 관계는 벌써 8개월 째 돈독하게 지나가고 있다.


수업시간마다 나는 아이들의 작문에 대해 책상 사이사이로 다니면서 문법 오류나 띄어쓰기 등 첨삭을 해준다. 어느 수업시간 준호의 작문을 봐주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읽어가며 첨삭지도를 했다. 마치고 다음 학생 자리로 이동해가면서 계속해서 첨삭을 하고 있는 중 갑자기 준호가 운다고 애들이 큰 소리로 알려준다.


왜 우느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큰 소리로 자기 글을 읽어서 내가 지적하는 부분을 다른 친구들이 들었으니 괜히 기분 상해서 운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준호야, 선생님이 미안해" 하고 사과를 하면서 달래주었다. 하지만 준호가 계속 우는 바람에 "준호야, 그만 울어. 선생님이 미안해. 남자가 고만한 일에 울면 안 되지. 뚝~" 하고 말했는데 글쎄 바로 다급하게 웨치는 동준, 규원이의 목소리;


"선생님, 그거 성차별입니다. 남자도 울 수 있죠."


아뿔싸~ 순간 머리가 하야 졌다. 나는 바로 "맞아 맞아, 선생님이 잘못했네. 애들아 미안하다. 준호야 미안해~" 하고 다급히 사과를 했다.


누가 초등학생이 어리다고 하는가.


8월에 대통령 배 전국 나라사랑 스피치 대회 공고를 보게 되었다.  공고가 계시된 지 거의 두 달만에 알게 되다 보니 급하게 5명의 참가자를 선발하고 개별 지도해서 예선에 참가시켰다.

꼼지락과 교무실의 팀장 선생님도 예선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아서 걱정을 했지만, 결과는 대구시 전체를 대표해서 5명 중 한 친구가 서울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지역 신문에도 나고 꼼지락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예선 당일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대에 선 나의 꼬마친구들이 보여준 행동이다. 자기 순서가 오기 전까지 초긴장했고 자기 이름이 호명되어 무대에 섰을 때는 더욱 떨던 아이들이 발표 도중 원고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도 전혀 흔들림 없이 시간 안에 마무리하고 내려오지 않는가.


나는 무대에서 내려온 아이들마다 모두 안아주었고 내 품에서 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결과가 발표되고 예선을 다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저마다 울먹이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께서 열심히 지도하셨는데 저희가 잘못해서 흑흑..."

"아니야, 충분히 잘했어. 정말 장하다. 잘했어. 고생했다."


감동이 밀려왔다. 평소 그렇게 개구쟁이 같던 아이들이 나의 정성을 알아주고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나도 눈물이 났다.


"선생님,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요."


예선에 나갔던 아현이가 내게 쓴 편지 속 한 구절이다. 한 달 동안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각자가 원고를 쓰고 다듬고 연습한다고 어린 나이에 고생한 아이들이 스피치 대회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중학생이 된 것처럼 마음이 훌쩍 자란 것 같다. 매주마다 나는 계속해서 사랑의 편지를 받는다.


누가 초등학생이 어리다고 하는가. 이 아이들에게 어른인 내가 오히려 배울 것이 많고,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나에게 주고 있지 않는가.

대구시를 대표해서 본선에 나가게 된 이호민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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