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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Aug 29. 2021

쌍팔년도식 해법

중고 신입의열 번째이야기

하루에 마시는 커피가 줄잡아 3~4잔 정도가 된다. 출근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이면 하루의 루틴이 깨진 것 같아 불안함이 몰려오곤 한다.

매일 습관처럼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시지만, 커피 맛을 제대로 알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즐겼던 믹스 커피의 끈적한 설탕 맛과 그 뒤에 따라오는 텁텁함이 싫어 검은색의 쓴 커피를 보약 삼아 마시고 있다.     


오늘도 뜨거운 커피를 텀블러에 가득 담았다. 

그러나 다른 날보다 커피 맛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불길했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소속된 팀의 마지막 직원이 그동안 생각해오던 결심을 끄집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 생활 5년 차.

일전에 팀을 옮기려고 시도했다가 발각(?)되었다. 이 일은 그에게 상처만 남긴 채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더욱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휴가는 잘 다녀왔어? 코로나라 어디 가지도 못했겠네?”     


“네, 그래도 친구들이랑 강원도 다녀왔어요.”     


휴가를 다녀온 그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잘 쉬고 온 사람이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차장님, 실은...?”     


그의 표정에서 그가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가 읽혔다.     


“응, 그래. 말해봐?”     


“저, 다음 달 말까지만 회사 나오겠습니다.”     


“음, 결정했어?”     


이미, 그의 마음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회사를 찾고 있다는 것도.    

 

“네, 휴가 동안에 다른 회사 면접 봤어요. 다음 달 말까지 다니고 그다음 달부터 출근하기로 했어요.”     


“그래, 후회 없이 결정한 거지?”     


“네.”     




그 친구의 탈출 감행이 발각(?)되 후, 팀 관리자들을 만나 이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린 친구가 팀을 옮기고 싶어 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을 상대로 현재 우리 팀이 가진 문제와 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에 관해 항변하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관리자들은 전혀 이 일에 대해 동의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가 떠나고 난 이후의 공백을 어떻게 매울 것인가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즘 젊은것들’로 시작하는 짜증 섞인 비난들.      


사실, 그가 팀이 아닌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관리자들과의 충돌 때문이다. 

사회생활 얼마 안 된 어린 친구가 또래들 간의 경쟁도 아닌, 기성세대와의 충돌이란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20년을 넘게 하나의 세상에서만 살아온 그들이기에 이 분야를 시작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단순한 반항 정도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그들의 법칙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혹시 김 차장도 다른 계획 있는 건 아니지?”   

  

“아직은요.”     


“아직은?”     


“네. 올해까지는 있겠지만, 입사할 때 말씀드렸던 사항들이 내년에도 이행되지 않는다면, 저도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을 은근하게 어필해 보았다.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팀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흔하게 들었던 말 중에 ‘쌍팔년도식’이란 말이 있다. 정확한 유래는 모르지만, 88 올림픽을 전후해 모든 군대가 비상 대기상태로 훈련과 군 생활을 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어렵고 힘든 옛날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통했던 방식,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전의 방식은 구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미 어린 직원들이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이기엔 문화와 제도가 변했다. 문제는 지금의 관리자들이 변화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직까지 쌍팔년도 방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최근, 나는 팀장으로서 새로운 일을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모든 팀원을 빼앗긴 상황에서 온전한 팀을 재구성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급선무가 되어 버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인원 충원이 먼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예상에서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안돼. 요즘 경력자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지금 있는 인원 데리고 돌려가면서 써. 야근 좀 하고 필요하면 철야도 좀 하면 되지!”     


“일이란 건 말이지,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해.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마무리되게 마련이야.”      


이번에도 옛날 그들이 성공했던 방식대로 끌고 가면 된다고 믿고 있다. 더군다나 처음 시작하는 시점에서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달콤한 말로 그들을 안심시킨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정 힘들 것 같으면, 다른 팀으로 넘기면 돼.”      


“일단 기본적인 것만 정리해놔. 필요하면 외주업체 알아볼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진행해.”     


하지만 직원들은 관리자의 이러한 말들이 모두 거짓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관리자들은 어떻게든 일을 거부감 없이 맡기기 위해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바쁘다.

그 후로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결과만을 바짝 다그칠 것이다. 이것이 선배들로 듣던 ‘쌍팔년도식’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식이었기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 ‘는 속담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 지금만 아니면 된다. ‘는 식의 그들의 사고이다. 무너지더라도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된다는 그들의 생각이 무섭기까지 했다. 

    

“김 차장이 책임지고 일해야 하는데, 그 친구 없이 일이 진행되겠어? 좀 강력하게 붙잡지. 뭐 했어? 그런데 걔는 뭐 땜에 관둔다는 거야?”    

 

남 일처럼 지금의 사태를 관망하는 이들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지거리 때문에 감정을 추스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회사란 공간에서 나의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싫어서 참고 또 참았지만, 그래도 마음으론 그의 물음에 몇 번이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 때문이란다. 너!      


어쨌거나 팀원 없는 팀장으로 이번 일을 떠안게 되었다. 앞으로 있을 험난한 과정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오늘은 몇 잔의 커피를 들이켜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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