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소 Nov 07. 2021

사라진 배려 그리고 남은 사랑

”차장님, 오늘 술 한잔 사주세요. “    

 

가끔 나에게 저녁이나 술 한잔 사달라는 직원이 있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회식이나 모임이 사라진 지금의 환경이 답답했던 그는 가끔 나의 눈치를 보며 시간 약속을 잡는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이 친구는 미래에 관한 궁금증이 많다. 구체적으로는 다른 회사들의 분위기, 대학 생활과 군대에 관한 경험들, 그리고 기술 분야에서 자격증이 필요한 이유 등,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렇게 그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대해 잊고 지냈던 나의 경험과 기억을 다시 소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어서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즐겁다.

그러나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나 때는 말이야.’란 추임새가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꼭 거쳐 가야 하는 건널목처럼 그가 현재 힘들어하는 것들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가 사는 나이대를 이미 지나온 나 또한 곤혹스러운 질문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대 초반의 연애 이야기’이다. 그럴 때면 자신 있게 ‘나 때는 말이지.’란 추임새가 나오질 않는다. 내 생에 있어서 연애라고는 잠시 만났던 여자와 손 한번 잡아본 게 전부였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단 하나밖에는 없다.     


”차장님, 여자 친구가 회사에서 하는 회식이나 행사 가지 말라고 난리예요. 자기는 학교 MT며, 서클 모임이며 다 따라다니면서 나 보고는 회사에서 일만 하고 자기만 만나라고 그러는데 미치겠어요. “   

  

”음, 헤어져. “     


”차장님, 여자 친구가 저보고 군대 가지 말래요. 저 군대 가면 자살할 거라고 울고불고 난리예요. “     


”음, 안 죽어. 그러니까 헤어져. “     


”차장님, 여자 친구가 자꾸 억지를 부려요.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자꾸 비싼 선물 사달라고 떼쓰고 짜증 내요. “     


”음, 그거 ‘가스 라이팅’이야. 헤어져. “     


나로서는 그의 말에 일관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가 이야기하는 그의 연애의 단면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연애에 있어서는 지금의 20대 초반의 친구들보다 어리숙할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랑과 전쟁‘이란 프로그램에서 나올법한 주변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점 정도만이 그들보다 나을 뿐.   



  

이삼십 대를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여럿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변 커플 중에 내가 생각했던 아름다운 사랑을 만든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에 취해서 현실을 못 본다고 말하겠지만, 주변 이들의 사랑이 급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는 이성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싹트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들 한다. (너무 오래된 우리 시대의 감정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많은 커플들이 오래지 않아 서로의 감정을 소모해가며 서로를 향해 끝없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도발하고 싸움을 만든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갈비뼈라도 내줄 것 같던 그들의 사랑이 결국 갈비뼈가 부러지는 ‘데이트 폭력’으로 바뀌는 관계의 모순을 보면서 과연 사랑이란 것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각자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결국엔 ‘배려 없는 이기심’이 만든 관계는 몸과 마음의 상처만을 남긴 채로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남자들의 폭력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이 느끼는 폭력은 다른 곳에 있다. 어려서부터 훈련(?) 받지 않은 일반의 남자들의 경우, 이성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논리적인 생각이나 말의 기술, 거기에 더해 감정을 드러내는 호소력까지 뭐하나 감당할 수가 없다.     


특히 나의 경우는 더했다.

어린 시절 여자들이 있는 모임의 경우, 그 모임의 성격이 어떠하건 간에 그녀들을 피하기 급급했다. 학교에서의 팀 과제 모임, 사회에서의 프로젝트 모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것이 없었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발생할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언어로 나의 생각을 관철시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뒤집을만한 나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농담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말이 안 되는 주장으로 우기기 급급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는 의견 충돌이 일어날 경우, 그냥 그들이 주장하는 말에 순응해 버린다. 계속된 충돌로 인해 한계점을 벗어날 경우,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이 배어 나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봐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러한 경우가 대다수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월급의 반 이상을 지출하는 친구, 현재 있는 곳에서 기반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새로운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를 결정한 친구 등. 모두 와이프의 결정을 친구들이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희망은 나의 이런 생각을 바꿔 줄 수 있는 이성에게 배려를 구걸해야 할 실정이다. 이미 수십 년을 각자가 만든 세상 속에 살아온 이들로서 자투리 공간 하나 배려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름을 이해한다면 그래도 사랑이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이 난 분이 있어 소개해 본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어 가끔 연락만 하는 선배의 이야기다.     

어느 날, 늦은 나이에 결혼한 선배가 지나가듯 나에게 말을 건넨다.     


“결혼해 보니까, 왜 남자들이 많이 배운 여자들을 피하는지 이해할 것 같아.”    

 

그녀도 일명 많이 배운 여자였다.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와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양한 미술과 관련된 활동을 해오던 일명 엘리트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피해오던(?) 결혼을 어느 순간 하고 난 이후, 새롭게 다가온 가족이란 환경이 그녀의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던 것 같다. 서로 늦은 나이에 만나 어렵게 가정을 만든 커플이라 나로서는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인 그들의 삶.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 싸울 일이 얼마나 있겠냐? 가끔 말다툼은 있는데, 그냥 내가 져줘. “     


그녀는 평소대로 쿨하게 자신의 결혼 이후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선배의 간단한 대답이 당연하다고 느꼈었다. 아마도 남자 입장에서 그녀의 삶을 이해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들이 알지 못하는 여자들의 배려를 통해 어쩌면 현실의 결혼생활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그러한 배려를 알기까지 서로가 너무 많은 시간과 경험을 희생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랑이란 배려를 내 삶 속에서 알아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쌍팔년도식 해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