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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소 May 22. 2022

출장; 업무

중고 신입의 열세 번째 이야기

말로만 듣던 거대 미국 기업의 D&D Center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식 기업문화와는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회사이기에, 그들의 조직 안에서 그들과의 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기대됐다.      


회사마다 문화와 조직이 다르겠지만, 이번에 함께한 기업의 첫인상은 ‘자유롭다’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당히 넓은 공간에 칸막이도 없이 테이블만 널찍하게 나눠 배치되어 있고, 최고급 모니터들이 책상마다 2대씩 놓여 있다. 출근하는 이들은 각자 정해진 자리도 없이 편한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출근 시간이 제각각이라 퇴근도 하루의 일과를 다 채우면 알아서 집으로 향한다. 미팅이나 협의가 있는 경우, 별도의 미팅 룸에 모여 업무를 진행한다.

일하는 이들은 모두 노트북(Lab top Computer)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로웠다. 일정과 모임에 따라 모니터나 책상을 사용하였으며, 시시때때로 모여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협의를 진행했다.


나로서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반면 한국인들은 업무 스타일은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이곳이 미국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앉은자리를 끝까지 고수했으며, 회의도 정해진 일정에 따라 같은 곳에서 진행되었다. 심지어 점심 식사도 부장급 팀 리더를 중심으로 한 곳에 모여 함께 식사할 정도였다. 미국 매니저들이 우리를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나 또한 한국 매니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 지정해준 자리를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했다. 책상과 의자를 내 몸에 맞추고 모니터의 각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필요한 도구들을 책상에 배치했다.

그러나 마냥 자유로울 것만 같던 나의 행동이 의외의 곳에서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나의 자리 정리를 본 미국인 매니저가 다가온다. 그리고 날리는 경고 아닌 경고. 

일과 관련된 것 이외의 내 개인 물품들을 책상 위에 배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소하는데 방해가 되고, 물건이 없어져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제기랄. 별걸 다 간섭하고 난리야.     


그의 경고 이후, 매일같이 가방 두 개로 컴퓨터와 개인 물품들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미국 현지 매니저들과의 일에 있어서도 한 가지 큰 차이점이 느껴졌다. 그것은 시간에 관한 개념이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상황이지만, 

이미 마무리됐어야만 하는 일이 몇 달이 지나도 결론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출장을 요청했던 한국 매니저들과 사전 만남을 가졌지만, 이들도 해결책이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참여하는 업무의 시작은 전체 미팅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매니저가 나를 소개하고 내가 해야 할 업무에 대해 미국 매니저들에게 설명한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그들은 미국 영화에서 본 듯한 사무적인 쿨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Nice to meet you?"     


그리고 시작된 업무 보고 및 진행 사항들.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행된 진척들에 대해 그들과 공유하고 앞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들에 대해 영어가 가능한 한국인 매니저가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진행한다. 

그러나 미국인 매니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건성으로 듣고 있던 매니저 중 한 명이 끼어든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알겠습니다. 설명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걸로는 돈을 줄일 수가 없어요. 너무도 미미하다는 말입니다.”     


한국인 매니저가 응수한다.     


“장비들을 앉힌 상태에서 줄일 수 있는 최선입니다. 당신 회사에서 대안을 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조금은 당황한 듯 미국인 매니저가 옆에 있던 건축 담당에게 뭔가를 속삭인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가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구조를 바꾸는 겁니다.”     


-앵? 구조를 바꾼다고?     


어설픈 영어 실력에 그의 말을 잘못들은 줄 알았다. 나는 옆에 있던 한국인 매니저에게 되물었다.     


“제네 뭐라는 거예요?”     


“전부터 계속적으로 해오던 이야기예요. 공사금액을 줄이기 위해서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거예요.”     


황당했다.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이 성과와 목표지향적인 것은 어디나 똑같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처럼 한국만큼 시간에 대해 절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을 말할 때 ’빨리빨리‘문화(?)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시간도 돈이라는 것을 그들은 한국만큼 절대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아무런 준비도, 자료도 없이 입으로만 떠드는 그들이 나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쓰벌.  

             



미국에서 현지 기술자들과 일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러한 일들이 벌어졌다.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것이지만, 이 경험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들이다.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있다. 다만, 내가 경험한 건축과 관련된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의 업무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회의가 너무도 많다. 내가 볼 때는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은데도 줄기차게 모여서 의견을 맞춘다. 처음에는 모두 필요한 회의라고 믿고 따랐다.      


-그래도 우리보다 선진국 방식인데, 아무려면.  

   

그러나 대부분의 회의가 주제도 방향성도 없이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새끼들은 맨날 회의만 하자고 하고 결론이 없어.”     


“우리를 독촉하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요?”     


회의라면 진절머리가 나도록 해온 한국 매니저들도 그들과의 회의에 대해서는 구수한 한국식 욕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하나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개념이 없다’라고까지 이야기하기는 뭐하지만, 약속한 일들에 대해 너무도 많은 핑계를 댄다.     


“너희가 필요해서 만들겠다는 공장인데, 대안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니야?”     


한국 매니저들의 반격에 커다란 눈을 굴리며 머리를 짜낸다.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요청해야 하는데, 3일 정도는 필요하다고 하거든. 다음 주에 대안 가져오면 최종안 정리하도록 하지.”     


그것에 비해 한국 매니저들은 요청한 일에 대해 반나절이 멀다 하고 시간마다 진도를 확인한다. 그것도 최소 3가지 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결국 자료를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몫이다.    

 

“금방 되죠? 점심 먹고 회의하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정리해 주세요. 대안 나오면 이것들 아주 제대로 조져주겠어.”     


급하게 정리된 대안들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회의에 참석한다.

그러나 오후에 이어지는 회의는 우리가 만들어간 방안들을 놓고 평가하는 장이 되고 만다. 

학생 시절 과제로 설계안을 가져가면 교수들이 내 설계안을 가지고 점수를 매기듯이, 미국 기술자들이나 매니저들이 마치 교수가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한국 기술자들이 제시한 방안들에 대해 평가하고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첨가한다. 더 웃기는 것은 자신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인양 제시한 안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안을 가져오라고 독촉까지 한다.

그런 경우, 나의 업무는 배가되어 돌아온다. 내가 제시한 방안에 그들의 요구 조건까지 충족시키려면 더 많은 생각과 대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 매니저들과 잡부같이 생긴 기술자 아저씨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 일정을 미루기 바쁘다. 어디서 배웠는지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연계된 다른 회사와 먼저 협의를 해야 한다.’는 등, ‘우리가 줘야 할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등의 들통날 거짓을 서슴없이 말한다.   


'엔지니어는 도면과 서류로 말하면 된다.'


나를 기술자의 길로 인도했던 선배의 조언을 다시 상기하며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협의를 통해 줄어든 건물 도면을 다시 만들고, 줄어든 만큼의 돈을 산출하는 일을 시작한다. 받은 만큼 보여줘야 하는 해결사로서 머리를 짜내고 또 짜낸다.     


누군가는 말한다. 미국이 선진화된 기술 강대국이라고. 분명 맞는 말이다. 지금의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었고 뛰어난 미국 기술자들이 여러 곳에서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미국의 제조업과 건설업의 기술자들은 이미 아시안 기술자들의 기술 능력과 비교하여 동등하거나 못한 경우가 많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배터리 공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은 가지고 있지만, 가격적인 측면에서 한국 기술에 뒤처져있다. 결국, 한국의 기술력을 수입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이전에 경험했던 미국의 엔지니어와 마찬가지로 쿨함 뒤에 숨어있는 그들의 빈약한 경험과 게으름을 여지없이 느낀 시간이었다.      


회의 자료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게 된 미국 매니저들이 벌써부터 나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받기로 한 최종안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핑계로 지금의 최종안을 함께 공유하자고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대외적인 쿨한 미소와 함께 대답한다.  

   

“I am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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