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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한아빠 Mar 11. 2024

1on1이 밥 먹여주더라.

"팀장님 저 할 이야기가 있어요. 시간 좀 내주세요."


 제 인생 제일 무서운 말을 고르라면 단언컨대 이 말을 고를 겁니다. 어릴 적엔 뭔지도 모르는 호환마마를 조심했는데 그것보단 한 10배쯤은 무서운 '할 이야기'. 이때 그 짧은 순간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죠.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은 없는지, 이 친구가 그만두면 대체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은 뽑을 수 있을지, 그 기간 동안 업무 분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주마등이 스치는 듯 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일어나는 기 현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번 정한 마음은 돌리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특히 평소에 '저 친구 참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네'라고 생각했던 팀원이 정한 마음은 제 힘으론 절대 돌릴 수 없는 나사를 만나는 것 같습니다. 감는 것을 알아채리 지도 못하게 끝까지 돌려놓은 나사는 어떠한 제안과 사탕발림을 해도 속수무책입니다.


 팀이 구성되고 몇 번의 퇴사자들을 겪다 보니 팀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직장의 불만보다는 퇴사자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찾아 떠나갔기 때문에 내 탓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이야기했던 비전을 충분히 이곳에서도 이룰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내 탓은 아니었지만 내 탓인 셈이죠. 그때 저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팀원들의 현재 퇴사의 전조를 알기 위해 정기적인 1 on 1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커리어 내내 교육업무를 해왔습니다. 교육생 앞에서 멋들어지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 on 1은 강의를 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쉬운 대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통제할 수 있는 강의와는 달리 1 on 1은 예상치 못한 반응과 질문에 초반에 꽤 애를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팀원들 개개인마다 고민도, 말하는 방식도, 성향이 다르다 보니 단순하게 생각하고 들어갔다가 하하 호호만 하다 끝나기도 하고, 서로 변명 배틀로 끝나기도 하고, 가끔은 마음이 상해 대면대면 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준비 없는 1 on 1은 의미 없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죠? 팀장 리더십 교육을 하면서 1 on 1의 중요성과 방법들을 그렇게 이야기해 놓고 저는 오히려 이성보단 감정이 앞서 있었으니까요.  


 1 on 1에 대해 다시 한판 정리하고 뿌셔버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1 on 1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이후에는 어떻게 팔로 업할지 등 명확한 기준을 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 on 1이 밥 먹여주나요?


 숫자에 몰입해 있는 조직일수록 숫자뒤 보이지 않는 성장을 놓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1 on 1의 경우가 그렇죠. 저 역시 시간을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것이 없어 보이고, 매일 회의가 몇 개인데 이 와중에 이것까지 챙겨야 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 평가시즌에 반드시 1 on 1의 결과를 입력해야 하는 과정을 마련해 놓으면 더 하기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의 일이 추가된 것처럼 보이니 그럴 수밖에요.


 단순히 일, 시간에 집중해서 보면 1 on 1만큼 아까운 시간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단타투자가 아닌 장기투자를 하실 계획이시라면 1 on 1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단, 정기적으로, 약속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미리 합의한 주제를 가지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겠다는 팀장님의 결심이 있다면요.


잘 준비된 1 on 1은 밥 먹여줍니다. 어떻게 밥상을 잘 차릴지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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