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아마도, 내가 유일하게 완전히 혼자이며 컨트롤할 수 있는 공간

by Dean

나는 어릴 때부터 자동차와 운전을 좋아했다.

20살이 되자마자 면허를 땄지만 차가 없으니

운전이 하고 싶어 아버지 차를 몰래 끌고 나갔다가 결국 주차장 벽에 박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당연히 부모님에게 혼났고, 신뢰는 바닥을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혈기 왕성한 20살에게 비싼 보험료와 운전대를 허락하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운전대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실력’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운전병으로 입대했다.

5주간의 엄격한 교육, 작은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서

모자로 맞아가며 운전을 배웠다.

25인승 카운티부터 40인승 대형 버스까지, 군대에서 쌓은 2만 km의 주행 기록은

나를 누구도 실력으로 터치할 수 없는 숙련자로 만들어주었다.

제대 후, 군 월급과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산 500만 원짜리 첫 중고차.

24살의 내게 그것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집에도 내 방은 있었지만, 오직 차 안에서만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내 컨트롤을 따라 움직이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크게 들을 수 있는 공간.

자동차는 내게 곧 '자유'였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은 "매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자동차는 인간의 발과 피부가 기계적으로 확장된 형태였다.

24살의 내가 중고차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을 때 느꼈던 그 전율은,

내 의지가 기계라는 거대한 몸체와 동기화되어

세상의 경로와 목적지를 직접 결정한다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나라는 인생의 조종자'로 거듭나는 자유였다.


현대 사회학자 마르크 오제는 공항이나 도로처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무색무취한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 불렀다.

하지만 그 삭막한 비장소 위를 달리는 자동차 안만큼은 가장 밀도 높은 ‘나만의 장소’가 된다.

창밖으로 획획 지나가는 풍경들은 나와 상관없는 외부의 세계지만,

차창 안은 내가 고른 음악과 내가 조정한 온도, 그리고 나만이 아는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기껏해야 두 사람 정도 누울 수 있는 공간 안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나 자신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운전을 한지도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시동 버튼을 누를 때의 설렘은 24살 그때와 다르지 않다.

차 문을 열어 나만의 소파에 앉아 문을 닫으면 희미한 자동차의 환영 메시지만이 들려온다.

그 순간 외부의 모든 소음은 차단되고, 오직 나와 이 공간의 고요함만이 남는다.

가속 페달을 밟는 답력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기계와의 교감은,

내가 여전히 내 삶의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물리적 증거로 다가온다.




도로 위의 차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내 왼쪽에서 달리고 있는 차의 목적지는 나는 모른다. 내 오른쪽에서 달리는 차의 목적지 역시 모른다.

모두의 종착지가 어딘지 알 수 없기에,

나를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왼쪽 차가 빠른지 오른쪽 차가 빠른지는

내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굳이 나와 그들을 비교할 필요도, 조급해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계기판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고 있느냐는 확신이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나의 경로를 그려나가는 것.

2평 남짓한 이 고요한 공간 안에서 나는 매일 그 자명한 진리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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