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나에게 선물하는 투명 망토

by Dean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

크리스마스 아침 해리는 ‘투명 망토’를 선물로 받는다.

그 망토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나에게는 향수가 그렇다.

나 역시 종종 향수라는 이름의 투명 망토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곤 한다.

이 망토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으로부터 나를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대신,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각인시킬지 스스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수는 내가 가진 물건 중 가장 형체가 없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둘러싼 분위기를 가장 빠르게 바꿔놓는다.

외출 전, 손목과 귀 뒤에 살짝 내려앉는 미세한 입자들은

내 몸을 감싸는 가장 얇고도 선명한 옷이 된다.

향수라는 망토를 두르는 순간,

나는 내가 정의한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 속에 나설 준비를 마친다.




현대 향수의 거장 프레데릭 말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향수는 그 사람의 서명(Signature)과도 같으며,

타인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그에게 향수는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한 인간의 개성을 공기 중에 새기는 가장 우아한 방식이다.


지금은 여러 향수를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사용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한 가지 향수를 사시사철 고집했었다.

한 가지 향수를 꾸준히 사용한 시간과 그 향기가 겹겹이 레이어가 되어

'나'라는 사람으로 기억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 지하철에서 너 냄새를 맡았어."

"길을 걷다 네 향기가 나더라."


지인들에게 종종 듣는 이런 말들은

내가 그 향수의 이미지로 누군가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증거다.

향기는 사람의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고 끈질기게 남는 법이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좋은 향기를 선물하는 것은,

나를 만나는 이들의 기억 속에 '나라는 사람의 풍경'을

가장 긍정적이고 선명하게 남기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인 ‘페르소나’를 언급했다.

향수는 이 페르소나에 가장 입체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도구인 것 같다.

묵직하고 신뢰감 주는 우디 향을 입었을 때와

싱그럽고 활기찬 시트러스 향을 입었을 때의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다.

향기가 내 몸에서 피어오르는 동안 나는 내가 선택한 그 향기의 성질을 닮아간다.

그것은 타인이 정해준 배역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한 일종의 '자기 암시'와 같다.


누군가 훗날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문득 나의 이름을 떠올린다면,

그건 내가 그 사람의 기억 속에 아주 근사한 투명 망토 한 자락을 남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향수병 속에 담긴 투명한 액체들은 단순한 화합물이 아니라,

내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방식이 담긴 쪽지이다.

요즘 언어로 치면 일종의 'DM'이랄까.




향기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지만,

그 향이 스치고 간 자리에는 '좋은 사람'이라는 잔상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정의를 바꾸고,

타인의 기억까지 따뜻하게 물들인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도 꽤 낭만적이다.


나는 또 어떤 투명 망토를 입고 세상으로 나갈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

어딘가 기록에는 남지 않겠지만,

나를 마주할 누군가의 코끝에는 선명하게 남을 나라는 사람.


가장 가벼운 향기 한 방울이, 오늘 나라는 사람의 무게를 더 빛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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