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of Homebody
3.
높은 건물이 그다지 없는 베를린에서 10층에 사는 일은 일종의 우연이고 행운이다. 우연같은 행운이거나 행운같은 우연. Tiergarten 공원 앞 새로 지어진 1인실 (발코니,부엌,화장실이 있는) 기숙사를 배정받은 나는 혼자 우뚝 솟은 방 안에서 매일 다른 노을을 구경하고, 구름 밑에선 절대 알 수 없을 큰 구름무리의 모양새를 구경하고, 비행기의 비행을 구경한다. 심지어 오늘은 침대에 누워 날아가는 흑조 구경까지 했다(착각일지 모르지만). 항상 이런 종류의 행운을 누렸던건 아니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엔 이사를 7번도 더 했더랬다. 베를린에서 바이에른 주로, 다시 바이에른에서 베를린으로 이사 올 적엔 무거운 짐과 이동거리에 힘이 부쳐 버스정류장 쓰레기통에 멀쩡한 헤어드라이기나 책, 신발 같은 것을 버리기도 했다. 정말 버리고싶지 않았었는데, 이삿길에 다정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어린 나를 생각하면 머쓱할만큼 강한 자기연민에 휩싸여 마음이 지끈지끈하다. 그렇게 줄곧 나는 언제까지고 이방인일 것임을 예감했지만, 처음으로 2년이란 시간을 보낸 이 기숙사의 계약을 2년 더 연장하고나니 이제는 잠시나마 이 곳을 집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고 몽실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4.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걷던 길에서 이탈해 베를린에서 혼자 걸었던 길은, 뛸 듯이 새롭고 다채로웠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않는 상처를 한가득 얻는 길이었다. 판데믹이라는 유례없는 재난상황은 이국의 사람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곳저곳 피흘리는 나를 잠시나마 가족의 곁에 묶어두었다. 마음놓고 쉬었고, 친구들과 연인의 곁에 살며 다시 한번 떠날 수 있을만큼 아물어갔다. 상처 위엔 조금은 말랑하지만 곧 단단히 굳을 딱지가 앉았다. 여러종류의 응원과 처음 시작하듯 무서운 마음을 한 품에 안고 나는 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매일 깨고 잠들며 고민으로 짜여진 하루를 살고있지만, 언젠가는 어느 노랫말처럼 손목에 핀 라일락이 밤새 두근거리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든 떠나야할듯 불안하던 이 집에서 나는 이제 그릇을 사고, 꽃과 화분을 기르고, 애정을 주려한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숨을 불어넣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