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프로파일러가 되고싶다던 L이 덧붙인 이유는 반 전체를 놀래켰지만 L은 정작 아무일 아니란듯 덤덤했다. 반은 고요했고 L은 그 한가운데에서 끝까지 말을 마쳤더랬다. 아무 일 아닌게 아니었을텐데 그때의 나는 그런 것까진 꿰뚫을 줄 모르는 열여섯이었다. 그냥 멋지다. 용감하다.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다. 처음엔 아마 경찰대에 갔을거라 생각했다. 열여섯의 L은 경찰대에 가고싶어했다. 신기루가 되어버린 친구를 되찾기 위한 고군분투에서 얻은건 가장 좋(다고여겨지)은 대학교 가장 인기 과에 진학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였다. 똑똑하고 명석했으니까 어려운 공부를 하고 인기있는 일을 하려나 지레짐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게 정말 L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살짝 소름돋아 할지도 모르지만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무튼 그 명단에도 운좋게 내가 찾던 이름 하나 적혀있을뿐 걔라는 확신도, 연락처도 없었다. 그게 L을 찾아헤매기 시작한 첫해이니까 그로부터 3년이 흐른거다. 드디어 찾았다. 실존인물이 맞았다.
L은 내로라하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너다워 좋다 생각했다. 프로파일링을 하고싶다던 너는 경찰대가 아니라 심리학이었구나. 수식어 다 떼고 마침내 구글 검색에 걸린건 대학신문에 실린 L의 수기였다. 우연찮게도 나도 알고있는 그녀의 중학교 시절에 대한 글이었다. 그때의 너는 참 신기한 친구였다. 매일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는 너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학원차에 타면 무슨 생각을 하냐 물었었다. 그냥 쉬는 시간에 흔히들 하는 시덥잖은 말이었다. L은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부리나케 내 자리에 찾아와 학원차에서 했던 생각에 대해 구구절절 들려주었다. 물어본 나도 까먹었는데. 허무맹랑한 물음에도 걔는 매번 사유했다. 네가 그런걸 물어보니까 내가 차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보게 됐는데..하며 천재같은 생각을 빠르게 늘어놓던 L이었다. 아쉽게도 무슨 생각을 들려줬는지는 기억 안나는데 아 얘 신기하다 느꼈던 감정이 남아있다. 너는 생각이 너무 빨라서 말로 옮기는게 어렵다 뭐 그런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신기한 애. 그냥 공부만 잘하는 애는 분명 아니였다. 내게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고싶냐고 물을 때, 비범한 사람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대답하게 된 저변엔 그날의 L이 있다. L은 가장 웃긴 답을 하고, 가장 신기한 생각을 하고,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였다.
나는 대충 4년 정도의 주기로 한번씩 내 인생을 회전시키는 사람을 만난다. 그건 12살때부터 시작된 법칙으로, 나의 2번째 4년엔 L이 있었다.
L과 나는 열여섯에 같은 반이 되었다. 그 전까진 말하자면 경쟁자 같은 것이었다. 전교 등수가 엎치락 뒤치락했다. 마지막 과목의 시험이 끝난 날에 복도 저 끝부터 우리 반까지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다짜고짜 너 평균 몇점이야 하던 모습이 L의 첫인상이었다. 살짝은 무례하다 생각했다. 그런식의 첫인사는 처음이라 L보다 간신히 높은 점수를 말했을 때 굳어지는 표정을 보고 조금은 쌤통이다 느꼈다. 열 넷의 나도 예의바르진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친해질 줄은 몰랐다. 3학년 몇반 배정 명단에 나란히 적혀있는 L과 내가 첫날부터 묘하게 어색했던 것도 당연하다. 사람들은 너희가 어쩌다 한반이 됐냐 물었다. 지나가다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지나가던 사람도 공부하던 사람도 머쓱했다. 서로의 독서실에 몰래 찾아가 훔쳐보는 기분같은거였다. 같은 반이라 어쩔 수도 없는데 말이다.
친해진 계기랄건 없었다. 친해질 사람은 절로 친해질 수 밖에는 없는 것 처럼 그냥 서로 말다운 말을 섞기 시작할 때 부터 친해졌다. L은 시덥잖은 내 헛소리나 헐렁대는 빈 구석을 좋아했고 나는 L의 날카롭지만 웃긴 성격이 좋았다. L은 누가봐도 재밌는 애였다. 장난도 창의적으로 쳤다. 또 타협하지않는 애였다. 재미에서나 공부에서나 그랬다. 욕심이란 단어가 생기부에 빠지지 않는 나보다도 욕심이 많은 친구였는데, 저정도 머리에 저정도 노력하는 애면 그정도는 부려도 되지 싶은 편안한 욕심이었다. 평균점수나 묻던 우리는 서로에게 예상문제를 내주는 친구가 되었다. 지루해질때쯤에 L은 사회교과서 171쪽 왼쪽 하단 사진에 있는 아파트 이름같은걸 문제로 냈고, 내가 현대아파트라고 대답하면 걔는 너 미쳤냐 그랬다. 사실 딱 그거 하나 기억난건데 그냥 교과서 페이지부터 사진까지 외운 사람인 척 했다. 나는 마음이 여렸고 L은 단단했다.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버팀목 같았다. 그렇다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냥 다정하지않게 다정했다. 멀리서 웃는 나한테 깔깔대며 내 웃음소리를 벨소리로 만들고싶다고 소리치던게 생각난다. 또라이여서 재밌었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던 1년간, 네 번의 시험에서 각각 두 번씩 등수를 나눠가졌다.
질투같은건 없었다. 나도 L을 등수로 명명했을 적엔, 예컨대 1학기에 몇등이었던 애, 2학기엔 몇등 한 애 식으로. 그럴 땐 경쟁의식같은게 있을 수 밖에 없지만, L을 가까이에 두고나니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L의 명석함은 등수니 성적이니 하는 것과는 치환할 수 조차 없는 것이었다. 나보다 확실하게 똑똑하고 기발한 사람을 만나면 이기고싶은 마음은 저절로 사라진다. 조금 과장해서 반 고흐나 일론 머스크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지는 않는 것과 비슷했다. 좋아하는 교수님한테 예쁨받고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옆에서 보는 너는 복도 저 끝에서부터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던 그 아이와는 이미 다른 눈을 가진 아이였다. 열여섯의 L이 어떻게 또래보다 매일매일 어른이 되었는지, 10년이 지난 L의 회고록을 읽으며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너는 그 때의 너를 잘 보듬어주고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랐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게 참 너답다 싶었다. 참 너다운 공부를 하게 됐다 생각했다. 스물여섯, 타인의 성취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어서 적어도 더이상 불행하지않다는 네 글의 마지막 말들은 여전히 나보다 어른이다.
무튼. L의 안부인사를 그녀의 글로 받으니 마음이 이리저리 진동한다. 이건 내 계산 밖의 일이다. 그도 그럴것이 버킷리스트를 세운지 하루만에 이룰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10년이 빠르다. 그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 찾고나니 왜 찾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을 적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적어보내려한다. 무엇을 적어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네가 분명하다고 우겼는데 그 14학번 L은 네가 맞는지, 그러면 어쩌다 그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디에 살게되었는지. 구구절절 케케묵은 이야기를 잘 실어보내 네가 받아 기쁠 편지를 적고싶다. 나는 네가 잘 살아서 기쁘다기보단 살아있는걸 보니 기쁘다. 답이 오면 좋겠다. 올해의 첫번째 버킷리스트는 덕분에 성공이다.
그리고 2년 후, 그 친구의 생일에 이 글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