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분명히 무언가 되어있을거라고 생각했다.
L을 찾기 위해 이제는 데면해진 옛친구들에게 연락해보기로 했다. 잘지내? 로 운을 띄웠지만 하고자했던 말은 그 끝에 달려있었다. L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그게 궁금했다. 누구는 내 메세지가 연예인한테 온 연락 같다며 반가워했다. 나도 안부를 잘 전하는 사람은 못되었다. 막상 L의 연락처를 아느냐는 단도직입적인 물음엔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머쓱하고 미안했다. 누구는 그런걸 왜 나한테 묻냐며 정색으로 답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썩 사이가 나빴었나보다.
이상하리만큼 닿지 않았다. 소식을 아는 이가 없었다. 내 중학교 졸업식 사진엔 L이 선명한데 마치 우리가 같은 적을 둔 날은 단 하루도 없던 것 처럼 보였다. L은 그 지역 똑똑이들이 앞다투어 입학하는 특목고에 진학해 기숙생활을 하러 떠났다. 나는 같은 지역 다른 구로 이사해 그곳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L과 나 둘 다 중학교 친구가 곧 고등학교 친구인 그런 학창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갈라졌다. 그래도 틈틈이 연락했다. 마지막 연락은 고3 봄 쯤이였는데, 그 무렵엔 누구나 그렇듯 참 무겁고 바빴다. 버스 기다리며 나눈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SNS란 SNS는 구석구석 뒤졌다. L과 친했던 고등학교 동문(일면식 없음..이 사람은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름..)의 페이스북까지 찾아 들어갔지만 차마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연락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직은 말이다. 정말, 정말 찾고싶어지면 그렇게라도 해보자 맘 먹은지가 4년이다. 겹치는 지인들로는 안되니 워낙에 지역수재였던 L을 떠올리며 구글에 무슨 고등학교 L, 무슨지역 1등 L, 무슨 대학교 L등을 마구잡이로 검색했다. 간신히 건져낸 14학번 명문대 XX과 신입생 한글파일에 적혀있는 그 이름이 L인지, 동명이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매일 L 생각에 오매불망 시름시름 지냈던건 절대 아니고, 잊고 살다가도 분기 별로 L의 안부가 미친듯이 궁금했다. 도대체 얘는 뭐하고 살고 있는거야. 때가 되었는지 어김없이 어젯밤 꿈에 나왔다.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가족들 앞에서 올해의 버킷리스트는 L을 찾는거야! 호기로운 장담(혹은 바람)을 늘어놓았다. 신입명단에 적힌 이름이 그 L이라고 단정하는 내게 언니는 그곳엔 사람이 워낙 많고 네가 찾는 그 이름도 아주 흔하다 했다. 아니 근데 내 인생에 L의 이름은 한명뿐이었는데 그게 흔해? 하고 우겼다. 내 느낌엔 얘가 걔가 맞아 느낌이 그래 하는 말에 언니는 진정해보라했다. 차라리 L의 동문에게 연락해보라고 했지만 쑥쓰러워 싫다했다. 이성적인 언니는 지금 걔를 찾는 방법은 네가 안쑥쓰러워하는 수 밖에는 없어. 했고 나는 그럼 올해의 버킷리스트니까 올해 안에만 안쑥쓰러우면 되겠네 하고 맞받아쳤다. 엄마는 너 참 신기하다며 계속 L을 찾아헤매는 나를 보니 도와주고 싶어진다 했다. 그 친구는 무슨 동아리였고 뭐에 뽑혔고 꿈은 프로파일러였고..등 수사반장 마냥 각종 L에 대한 단서를 늘어놓았다. 장래희망을 말해볼 사람이 있느냔 선생님의 말에 손을 번쩍든건 L뿐이였다. 그래서 기억한다. 엄마는 너말마따나 그렇게 대단한 친구고 프로파일러가 됐다면 검찰청이나 경찰청에 수소문해주겠다 했다. 그게 가능은 한 일이냐며 농담에 농담으로 답했다.
호언장담 후엔 여느때처럼 L의 이름 뒤에, 혹은 앞에 여러 단어를 바꿔가며 검색할 뿐이었다. 그것밖에는 뭐 별다른 재간이 있나. 그러다 문득 그 친구라면 분명 이때쯤, 이 나이때쯤 범상치않은 무언가 하나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이름 세글자만 쳐도 나오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말이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단, 사실 이름 뒤에 붙일 수식어가 동난 탓이었다. 다짜고짜 이름만 적어 엔터를 쳤다. 그리곤 이내 헛웃음이 터졌다.
진짜 나오네. 진짜 나왔다. 구글 이미지 첫줄에 버젓이 웃고 있었다. 나는 너를 그렇게나 찾았는데 여기서 속편히 웃고있네가 첫번째고, 너는 진짜 무언가를 했구나가 두번째. 마음 한켠으론 사실 네게 나쁜 일이 생겼을까 걱정했다. 다행이야, 세번째는 안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