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이번 학기엔 죽음에 대한 그리스 신화 수업을 듣는다. 나의 부서진 부분중 하나는 죽는 것에 대한 공포, 정확히 말하자면 끝에 대한 병적인 공포인데, 그것을 이해하고 또 이겨내보고자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의 이름은 ‘Das Reich des Hades’ 이고, ‘하데스의 세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수업의 첫머리엔 그리스 신의 계보를 익히고자 일리아스와 헤시오드의 서사시를 읽는데, 태초의 신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가이아, 우라노스, 크로노스, 타르타로스 등이 등장한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결혼해 16명의 아이를 낳지만, 우라노스는 아이들 중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를 두렵고 혐오스럽게 생긴 괴물이라는 이유로 지하세계, 소위 지옥으로 표현되는 타르타로스에 가둔다. (타르타로스는 신이자, 동시에 빛이 들지 않는 지하공간 그 자체이다. 또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이다. 그리스 신화는 지금의 상식과 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라노스와 타르타로스가 신화의 한구절에 등장하는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매일 자신으로부터 탄생한 저마다의 불안과 공포를 각자의 타르타로스 안에 가둔다. 타르타로스의 깊이는 철침나무를 떨어트렸을때 9일 밤낮으로 떨어지다 10일째에 도착하는 깊이라고 하는데, 나 또한 그 안에 못나고 무섭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많이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아무리 깊어도, 가둔다고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면, 꺼내주어야한다. 꺼내주어 곁에 두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건, 완전히 떠나보내건 해야한다. 우라노스는 자신의 아이들 중 하나인 크로노스가 형제의 복수를 위해 세상밖으로 나올 때 패배하고 영영 도망치는데, 그가 패배한 이유는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가 정말로 그를 집어삼킬 막강하고 두려운 괴물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스스로 그들을 깊고 어두운 곳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2024.
크로노스는 물리적으로 측량 가능한 정량적 시간을 의미하는 신이며,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후 그 또한 자신의 흉측한 형제들을 타르타로스로부터 꺼내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