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 하는 망생이는 오늘도 도약 중
"드디어 때가 왔어!"
이제 본격적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어야 겠다며 서른 즈음에 백수를 선언한지 3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이룬 성과는 정말 하나도 없는 걸까?
첫 1년 동안, 나는 닥치는 대로 썼다.
마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꽤 마음에 드는 단막극 한 편을 완성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공모전에 접수했다.
'접수하기'
버튼 하나를 누루는 데에도 어찌나 떨리던지,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혼자 이불킥을 해대던 내가 귀엽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공모전 당선작 발표일.
나는 기대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결과는 뻔했다. 기껏해야 런닝타임 10분짜리 열 다섯편의 웹드라마 하나를 써놓고 내 눈 앞에 드라마 작가로서의 포문이 열린 듯 자만하던 시절이었다.
그땐 몰랐다. 뭐라도 될 것만 같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단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으니까..
1년 동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뭐라도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조바심이라는 놈이 내 목을 조여올 때 즈음, 한눈을 팔기 시작했다.
글이라면 뭐라도 써야겠다.
그렇게 웹소설을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쉬워보였다.
"영상으로 구현되기 위한 수십만가지의 작법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낵컬쳐라는데, 나도 그냥 재미있게 쓰면 되겠지! 오케이~, 콜!"
웹소설 공모전에 도전하고난 후, 나는 또 한번 가슴 속에 '실패'란 글자를 아로새겼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마치 시나리오는 장독대에 묵혀뒀다 꺼내먹는 묵은지 같았고, 웹소설의 세계는 겉절이 같은 존재였다.
그 차이를 모른 채 액젓을 듬뿍 넣은 나의 글에는 영화 같네요, 시나리오 같아요, 류의 댓글이 종종 달리곤 했다. 웹소설 쓰랬더니 시나리오를 쓴 셈이었다.
감사하게도 중간 중간 나에겐 소일거리가 들어왔고, 행사 대본이나 광고 드라마 같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돈을 벌기위해서라기 보단, 정체성을 잃어갈 때쯤 한 개씩 한 일이었다.
"나도 작가다."
내 자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다.
2년째 망생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지쳐있었다.
스물 세살 때부터 방송 작가일을 하며 일은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실패라는 걸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에, 계속되는 망생이 생활이 적응 될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 시작 할때의 당찬 포부도 퇴색되어 가고, 의욕 또한 사라지고 있었다.
뭔가가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보단, 나도 모르는 사이 실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멈춰 서있는 나를 다시 걷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아카데미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수업을 듣는 내내 기뻤다 슬펐다를 반복했다.
성장하고 있는 내가 기뻤다가, 좋지 않은 결과물에 슬펐다가..,
대학시절 노트를 펴보면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있기도 했다.
그럼 나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뭘 한 걸까 싶어 자괴감에 빠졌다가, 그야말로 미친 사람 같았다.
약 6개월에 걸친 수업이 끝나고 말았다.
뭔가 쓰긴 썼고, 완고를 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출발선에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단 하나도 100% 내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레기만 끄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또 다시 실패자라는 낙인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붕 떠있었다. 최악이었다. 잠시도 책상에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기 위해 작업실 꾸미기에 몰입했다.
굳이 셀프조립용 가구를 사서 조립하고, 노트북을 세팅했다가, PC를 세팅했다가, 책상을 좌로 놨다 우로 놨다,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움직여도 책상에 앉기를 거부하는 내 엉덩이를 저주했다.
결국 지갑까지 탈탈 털어버렸다.
새로운 독서대를 사고, 새로운 스탠드를 사고, 새로운 책상을 주문했다.
남편의 책상을 다른 방으로 옮겨버리고, 오롯이 내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마음에 쏙 드는 작업실의 모양이 만들어질 때쯤, 드디어! 마법처럼 기분이 한껏 업되며 책상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흐뭇한 미소를 입안 가득 머금고 책상에 앉자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이러더라?.."
나는 지금 딱, 공부 못하는 애들처럼, 이러고 있다.
시놉시스 수정을 한 달째 붙들고 있으면서, 브런치를 켰다.
이 글에 THE END를 쓰는 순간, 새롭게 시작하려 도약하는 중이다.
잊지 말자.
언젠가 높이 오를 날을 위해 도약 중이라는 것을.
완벽한 글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대도,
그건 ZERO가 아니라는 것을.
실패작에도 깨달음은 있다.
나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한 이 글을 마치면,
실패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다시 새하얀 '빈 페이지'를 메꿔보려 한다.
- 망생이의 하루, The end.., 아닌, St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