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 영국은 해가 짧아지고 거의 매일같이 비가 오고 떨어진 잎들이 비에 젖으면서 길바닥이 미끄러워진다. 이맘때쯤이 되면 할로윈이 오고, 그리고 약 5일 뒤 가이폭스데이(불꽃놀이 하는 날)이 있어 밤이 되면 집집마다 정원에서 피우는 불 냄새 그리고 폭죽 소리들을 듣게 된다. 올해 할로윈에는 사람들이 호박도 사재기를 했는 지 늦장을 부리다가 큰 호박을 구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작은 호박들을 몇 개 구해 얼굴을 팠는데...
귀엽다. ㅎㅎㅎ
할로윈이 지나자 2차 봉쇄 발표가 났고, 이제 한 달 동안 영국에서는 모든 불필요한 사업장들은 문을 닫게 된다. 슈퍼마켓이나 포장 음식점들은 문을 열어도 되지만 앉아서 밥을 먹는 곳들은 문을 열 수가 없다. 미용실, 서점, 헬스장, 극장, 모든 문화 공간들은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된다. 식당에 앉아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찬스를 놓칠 수 없어 봉쇄 하루 전 날 집 근처 펍에 가서 밥을 먹었다. 최후의 만찬. 그리고 최후의 햇빛.
셰프도 뭔가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했던 걸까. 원래 더럽게 맛이 없는 집인데 이 날은 음식 맛이 좋았다.
앞으로 한 달 이상 길어질 수 있다는 전면 봉쇄는 마치 이제 겨울잠을 잘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정부의 일관성없는 들쑥날쑥한 정책 발표에 온갖 루머들이 난무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햇빛 없는 겨울, 원래도 그닥 할 일 없었던 시간, 올해는 조금 더 조용히 보내는 것일 뿐. 그 동안 많이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