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lee Aug 27. 2024

밥 한번 살게요.

15. 갈팡질팡 치매 동반기.

엄마의 치매에 관한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지만  나는 실제로는 엄마의 치매로 인해 그리 심하게 힘든 건 아니었다.

다른 분들처럼 엄마의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게 제일 큰 요인이고 두 번째는 엄마의 몸 무게가 38킬로 밖에 안되어서 내가 엄마를  혼자서도 안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섬망 증세도 심하지 않아서 가끔 붙박이 벽장에서 뭐가 나온다고 하는 정도였다. 언어도 폭력적이지도 않고 비교적 잠도 잘 주무셨다. 이건 내가 잠을 너무 잘 자서 못 느끼고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가끔 밤에 노래를 부르실 때도 있었는데 나는 한번 잠이 들면 거의 실신 수준으로 자는 편이라 아마도 큰 불편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드시는 것도 양도 많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잘 드시는 편이었다. 드시는 것이 적으니 대소변의 양도 적고 다행히 규칙적이어서 아침에 화장실에 가면 대체적으로 순탄하게 하루가 정리가 되는 편이었다. 덕분에 기저귀에 대변을 처리한 기억은 별로 없다. 엄마가 혼자 사실 때 식사를 더 영양가 있게 잘 드셨으면 치매가 더 늦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내가 중국에 안 가고 엄마랑 같이 살았다면? 아마도 후회할 일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나 간 일들은 매 사건마다 후회를 동반한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효녀인 딸은 또 아닌 것 같다.


엄마에게 내가 누구냐고 열 번 물어보면 한 두 번은 "딸이지"라고 대답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도 나이가 들고 엄마의 치매 상태는 점점 심해지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평상시에 나는 죽으면 뭐 그뿐이지. 죽기 전에 주변 정리를 잘해야지 정도가 나의 죽음에 대한 대처법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서 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불교의 윤회사상을 싫어한다.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도 이리 살면 뭐 하나 그런 생각을 가끔은 하면서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두려움이 앞서던 그런 때였다.


그날도 엄마가 데이케어 센터에서 돌아오시는 시간에 나는 휠체어를 가지고 엄마를 마중 나갔다. 차에 같이 탑승하는 보호사 분과 나는 엄마를 휠체어에 익숙하게 앉혔다. 이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엄마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사는 10층으로 올라갔다. 우리 아파트는 복도식이라 조금 걸어야 한다.

"아유, 바람이 참 시원하구나"

그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엄마가 비록 치매 상태이긴 하지만 감정을 못 느끼는 건 아니구나. 이게 정말이구나.


책에서 보면 환자의 감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치매이긴 하지만 24시간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책과 같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은 기억 속으로 바쁘게 돌아갔다. 엄마는 치매여서  뭘 모르고 반응도 없으니 나 편한 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갈려 있었을 것이다.

한편 속으로 가지고 있는 불편한 마음 귀찮아하는 생각들이 드러나는 행동을 엄마에게 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혼자 말이라도

" 때가 되면 먹는 건 다 드셔야 하네"라든지

목욕을 하다가

 "노인이 돼도 때도 참 많이 나오네"

같은 말을 내뱄은 건 아닐까? 하는 자책과 죄스러움이 엉켜있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를 엄마 방에 뉘어드리고 나오는 순간

"내가 밥 한번 살게요"

엄마는 말했다.

"에? 뭐라고요?"

나는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

"나한테 너무 잘해주고 고마워서 꼭 한번 대접을 하고 싶었어요"

그 순간 나는 미친 듯이 웃었다. 아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 돈은 있어?"

고상한 엄마에 비해서 딸은 너무 속물적이었다.

"뭘 사줄 건대?" 라던지 아니면 "제가 사들릴께요" 도 있는데....

나는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한다.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엄마처럼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말에 욕설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어쩌지.

두렵다. 치매는 우리가 위장으로 덮고 있던 포장지를 거두워 내서 그 인간 그 자체를 보게 한다.

나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려서도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엄마의 그 한마디 "밥 한번 살게요"는 내 마음속에 따듯한 불씨처럼 남아있다.


부언 : 치매에 관해서 도움도 되고 위로가 되는 책

하세가와 가즈오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를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치매에 걸린 치매 전문의의 마지막 조언"이란 부제가 붙어 있어요.

이분은 2021년 이 책이 초판일 당시 92세로 제 생각으론 치매에 안 걸린 동년배인 분들보다 활동적인 것 같아요.

작가의 이전글 벽에다 똥칠할 때까지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