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갈팡질팡 치매동반기
나는 늘 꿈이 소박했던 것 같다.
퇴직을 하면서 내 인생의 마무리는 엄마를 잘 보내드리고 손자를 잘 돌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달에 중국에서 전화가 왔다. 디자인 업체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다. 전에 같이 일하던 회사에
연락을 하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단지 일을 연결시켜 주는 것뿐인데도....
그때 생각했다 내가 인생을 너무나 소심하게 생각한 건 아닐까?
실제로는 그 경쟁을 감당할 자신도 이겨낼 자신도 없어서 편안한 길을 선택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미 시간은 지나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소소하게 행복하다. 단지 한 가지 오판이 있는데 노년의 생활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꿈이 소박했던 만큼 노년의 경제적인 준비도 소박했다. 그래서 가끔은 불안에 떨기도 한다.
엄마가 데이케어 다니시면서 내 생활은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게 되었다.
일단 엄마가 길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어지니 안심이 되어서 아이를 돌보는 일도 내 개인적인 일도 훨씬 편안하게 하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는 저녁 7시 정도에 데이케어에서 돌아오시면 9시 정도면 잠이 드셨다. 나는 잠드시기 전에 화장실 한번 정도 다녀오는 수고만 하면 되었다.
혹시 내가 저녁 약속이 있으면 드실 물과 간단한 간식을 옆에 챙겨드리고 잠깐 나갔다 오기도 했다.
물론 알림판을 만들어서 잘 보이고 손에 닿는 거리에 놓아두고 나가곤 했다.
엄마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걷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걸어서 자발적으로 화장실을 혼자 가는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것인지 겪어보면 알게 된다.
손자들을 보면 혼자 화장실을 가게 되면 문을 닫고 할머니를 나가라고 한다.
독립적으로 혼자서 해보겠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엄마는 오래 앉아 있어서 걷는 기능을 상실한 것 같았다.
미리 알았으면 걷는 운동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럼 좀 걷는 시간을 늦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데이케어 센터에서도 걷는 운동을 하는 시간이 있다. 그걸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엄마의 경우도 기억키움교실에 다니실 때는 한 시간 반도 걸어서 다니셨다. 어쩌면 그 힘으로 그동안을 버텨 오신 것일 수도 있다.
구십이 넘어도 잘 걷고 평상적인 일도 잘하는 분도 계시니 이것은 개인의 차이겠지만 운동이 그만큼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많이 보는 노인과 운동을 많이 하는 노인 중에 치매 예방에 더 좋은 노인은?
나는 운동을 많이 하는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의사가 진행하는 유튜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천하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엄마는 1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셨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엄마를 욕조에 앉히면 참 좋아하셨다.
"아이코 시원하구나"
엄마의 표현력은 이 정도였다. 욕조에 기대서 몹시 흐뭇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 계시기도 했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즉 때가 부를 무렵이 되면 나는 마치 세신사처럼 이태리타월에 비누를 묻혀서 팔부터 차는 차근 밀어 나가곤 했다.
"노인네가 웬 때가 잘도 나오네"
나는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욕조에 들어갈 때도 일단 걸터앉은 다음에 한 발씩 들어서 욕조 안으로 앉혀드려야 한다. 반대편 팔다리의 때를 밀 때는 방향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그때도 조심스럽게 바꿔야 한다. 욕조의 물에도 부력이 있어서 살살 움직이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욕조에서 목욕을 더 이상 할 수가 없는 단계가 온다. 우리의 경우는 엄마가 욕조에 걸터앉기도 힘들고 내가 엄마를 안고 욕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그러면 목욕 의자를 사용해서 앉혀진 상태로 샤워기만을 이용해서 목욕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집이 너무 좁아서 목욕의자를 사용할 수 없으면 양변기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야에 따스한 물을 받아 놓고 양변기에 앉힌 다음에 발을 따듯한 물에 담그게 하고 샤워기를 이용해서 목욕을 하면 된다.
목욕의자도 휠체어도 모두 복지용구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휠체어 같은 경우는 대여하는 것보다 장기간 사용하게 되면 구매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엄마와 나의 일상은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