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집 이외의 다른 곳에서 엄마를 잠들게 하지 않겠단 결심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사랑의 맹세만 허무한게 아니였다.
나는 엄마와 같이 살면서 손자를 돌본다. 그 사이 둘째 손자가 태어났다.
아침에 엄마를 데이케어 센터에 보내고 딸네 집으로 가서 둘을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보낸다.
오후에 하원을 시켜서 딸 혹은 사위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같이 있다가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가 데이케어 센터에서 돌아오시면 일상적인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 8시에 나가셔서 저녁 7시에 귀가를 하게 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열 시 이후부터 오후 세시까지가 나의 자유 시간이다.
물론 그 시간에 양쪽 집안 일도 하기는 해야 한다.
큰 손자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어 이사를 결정했다.
거기엔 내 개인 사정으로 분당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사정이 있기도 했다.
문제는 두 집의 이사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원래는 양쪽의 집을 팔아서 이사를 하기로 계획을 했지만 역시 인생은 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갑자기 집 값이 많이 떨어지면서 거래가 전혀 없어서 집을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세로 전환을 했다. 단지 내에서 전세 가격이 제일 저렴한데도 계약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보러 오는 사람이 줄어드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부동산에 물어보니 오래된 집이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를 않는다고 한다.
결국 집수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이사 한 곳에서는 적어도 사 개월 정도는 20평대 집에서 딸네와 같이 살아야 된다.
그래서 결국엔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 결정이 내 생각으로는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현대판 고려장이란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의 두 달여의 고민과 갈등은 아마도 치매 환자와 같이 사는 그러다가 결국엔 요양원에 모셔야만 하는 상황에 다다른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통일 듯싶다.
어제는 '요양원에 가셔야 해' 오늘은' 이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반복한다.
사용하는 단어도 요양원에 보낸다고 하면 뭔가 버리는 느낌이고 모신다고 하면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말을 어떻게 써도 결국 행위 자체에는 변함이 없기는 하지만.
엄마의 담당의사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면 가족이 모시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말이 적어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엄마의 반응이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요양원에 가셔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도 엄마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엄마는 싫다고 할 수도 없을 상태였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엄마의 반응과는 별도로 어쩔 수 없는 죄책감과 부모보다 자식을 우선 생각하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비슷한 연세의 외삼촌과 작은 아버지께는 도대체 뭐라고 한단 말인가. 그 두 분은 내가 엄마와 함께 산다는 것에 큰 위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특별히 다정하시기도 했다.
특히 성격이 불 같은 작은 아버지는 내가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다는 걸 알면 나의 따귀를 때리러 오실 수도 있을 듯하기도 했다. 집안의 뭔가 문제가 생기면 특히 나쁜 일이나 당신이 생각했을 때 안 좋은 경우라고 생각이 들면 거침 없는 의견을 내 놓는 분이 작은 아버지이다. 그러니까 나는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의 평판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인 것이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고 얼마 뒤에 나는 전화로 말씀을 드렸다.
결국은 아시게 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도 따귀를 때리러 오시지도 않았고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결국은.....' 그 말이 다였다.
그리곤 가끔씩 보내시던 태극기부대의 카톡을 안보내시는 걸로 분노의 표시를 하셨다.
받으면 열어 보기도 싫었던 그 카톡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주위의 친척들에게도 알리고 무서운 작은 아버지 문제도 해결되니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지기는 했다.
어떤 날은 육십 대 중반이나 되는 나이에 이 모든 것이 돈이 많으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깨닫고 무능한 자신을 원망도 했다. 돈이 많으면 넓은 집에 돌보는 사람을 여럿이 있으면 된다. 집 문제는 별도로 하고도 한 달에 오백만 원 정도를 인건비로 쓸 능력이 있으면 괴로워하지 않고도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 그런 능력이 참 쉬운 일은 아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새삼스레 돈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인생은 참 시도 때도 없이 여러가지를 알려준다.
일단은 가실 요양원을 알아봐야 했다. 요양원에 가려면 시설등급을 먼저 받아야 한다.
시설등급 신청은 의료보험 관리 공단에 신청을 하면 심사를 해서 결과를 통보해 주는데 결과 통보까지 두 달 정도를 예상하는 것이 일정상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신청을 하면 심사하는 분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을 하고 공단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심사를 해서 보호자에게 통보를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치매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심사가 수월하기도 하다.
어떤 요양원이 좋을지 알아보는 건 사정에 따라 다 다를 듯싶다. 집하고의 거리 문제와 시설 상태는 공통적으로 누구에게나 다 해당될 듯하다. 나의 경우는 엄마가 걷지를 못하시니 외부 환경은 별 문제가 없어 시설을 중심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요양원 홈페이지를 여러 곳 검색을 했다. 엄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니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을 중심으로 알아봤는데 보통은 삼사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지금 사는 집 바로 앞에 걸어서 오분거리에 있는 "안나의 집"도 보통은 삼 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기 명단에 올려놓았다. 지금 당장 수용 가능한 요양원이 필요한데 삼 년을 기다리라고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오 년 이상 기다리셔야 하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조언을 해주는 곳도 있었다. 일단 중증 정도가 되어야 시설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고 또 요양원을 알아보아야 하니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요양원으로 간다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 후에 시설등급 신청등을 해야 한다.
등금이 결정된 이후에 요양원에 등록을 해야하고 그 기간에 적이도 몇달은 걸릴 수 있다.
그 사이의 시간이 돌보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기간이 된다. 게다가 평판이 좋은 요양원은 대기가 많으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리게 된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신청을 하는 과정에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마음을 많이 다치기도 한다. 상처 받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