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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ee Nov 08. 2024

엄마의 수의

17. 갈팡질팡 치매 동반기

내 생각엔 사람들이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긴 투병 기간이 가장 커다란 원인일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감추고 싶은 시시콜콜하거나 찌질한 과거사, 부끄러운 가족 사이의 갈등, 나 자신의 내면, 남에게 들어낼 수 없는 것들을 이성의 덮개로 덮고 살아간다.

그러나 치매의 긴 길에 들어서면 이런 이성적인 판단이 날아가 버릴 위험에 처해진다.

나도 가끔은 만약 치매가 온다면 엄마처럼 고상하게 오길 기도한다. 그동안 참았던 분노의 표출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치매노인으로 나타나면 자식들에게 얼마나 면구스러울까 걱정된다.

인간의 근본적인 바탕이 그대로 드러났을 때 너무 추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는 육십 대에는 늘 말했었다.

"수즉다욕(壽即多辱). 인간이 오래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야.

쓸모가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인 인간의 도리지"

뭐 이런 내용의 말이었다.

나는 늘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 엄마가 좋아하는 하느님 곁으로 빨리 가는 것도 좋겠네'

아마도 가끔은 엄마에게 이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칠십 대를 넘어서면서는 그 말이 엄마에게서 사라졌다.

엄마도 죽음이 가까이 온다는 걸 느끼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긴 걸까?

나도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가끔은 아파트 화단의 나무에게 말한다.

"네가 나보다 더 오래 여기에 남아있겠구나"

나의 남은 날들은 길어야 이십 년.

인생은 유한하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내가 그 상자를 발견했을 때 아마도 엄마가 칠십 대 중반 정도였던 것 같다.

실은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그 정도였을 듯싶다.

어느 날 엄마의 방에 이상한 상자가 하나 생겼다.

"엄마, 저 상자는 뭐 하는 거야?"

"저거, 수의야. 내가 죽으면 당황할까 미리 준비했지. 오동나무 상자에 들어 있어서 벌레도 안 생겨"

수의를 미리 장만해 놓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고 해서 그런가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딸을 얼마나 못 믿으면 수의까지 미리 본인이 준비를 했을까 싶기도 했다.

수의만 준비를 했을까?

영정 사진도 준비를 했다. 문제는 영정 사진이 너무 컸다. 게다가 지난번 이사를 하면서 봤더니 엄마의 지금 모습과 달리 너무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만 보면 육십 대에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 들 듯했다.

액자의 틀은 빼서 버리고 사진만 남겼다.

그리곤 엄마의 영정 사진으로 쓰려고 하얀 진달래 앞에서 웃는 모습의 사진도 한 장 찍어 놓았다.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영정 사진이 없어서 작은 증명사진을 확대해서 썼는데

나중에 정리를 하다 보니 문갑 안에 군인 정복을 입고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했다고 했다.

평생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당신의 최후의 모습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는데 자식들은 몰랐던 것이다.

우리 엄마도 수의, 영정 사진, 자신이 묻힐 묘지까지 준비를 완료한 셈이다.

화장은 싫다고 했으니 방법까지도 디렉션을 마친 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늘 맘에 걸렸던 그 상자를 풀어 보았다.

상자 속에는 하얀 인견 보자기에 싸여 있는 수의가 오도카니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의 수의를 하나하나 꺼내어 빨래 건조대에 널었다.

베와 인견으로 만들어진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에 버선까지 밑에는 광목도 한필 있었다.

오동나무 상자 덕인지 수의는 온전하게 있었다.

역시 이 수의는 남달랐다.

인견과 삼베를 써서 겹으로 만들어져 다른 수의와 달리 두툼한 느낌이었다.

나도 초상을 몇 번 치렀고 염도 몇 번 참관했지만 이런 수의를 본 적은 없었다.

보통 수의는 윤달에 만든다고 알고 있는데  그 시기에 맞춰서 수의를 이렇게 만들려고 얼마나 신경을 썼을지 모르겠다.  이건 삶에 대한 애착일까? 죽음에 대한 존중일까?

엄마가 일상생활이 가능했을 때는 낮에 손질을 해서 다시 넣어 놓았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이십 년 만에 개봉하는 수의를 보는 순간 먹먹한 마음과 함께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하루 종일 햇볕과 바람을 쏘이고 하루 밤도 지냈다.

밤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 그날밤 수의가 걸려 있는 우리 집 베란다는 좀 엽기적이었을 듯하다.

수의를 장롱 안에 모셔 놓고 자는 잠은 어떤 것일까?

나는 준비를 다 했으니 이제 죽어도 된다는 안도하는 마음 인지 아니면 수의를 장만해 놓았으니 오래 살 거야 일지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수의는 다시 인견 보자기에 싸여 오동나무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내 수의는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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