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엄마라는 말보다 어머니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내 기억에 엄마는 나를 예쁘다고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보통의 엄마는 자신의 딸이 안 이뻐도 예쁘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엄마는 그런 면에서 요즘으로 치자면 쿨한 엄마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은 아버지도 엄마도 표현에 조금 인색한 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내가 엄마가 되면 내 자식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도 했었다.
실제로 칭찬에도 인색하지만 야단을 치는 일에도 감정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의 교육과 상벌에 관해서는 엄마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있었지만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엔 없다. 야단을 맞고 벌을 선 기억은 있다 보다는 많다가 더 적절하려나?
나는 뭔가를 잘 저지르는 아이였던 것 같다.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 방구석 모서리에 육각형으로 된 유엔 성냥갑을 머리에 이고 서 있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만큼 그 유엔 성냥갑의 이미지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성냥의 황색깔도 아직도 선명하니 나와 유엔 성냥갑은 참으로 친한 관계임이 확실하다.
또 한 가지는 나보다 여덟 살이 어린 남동생 앞에서 나를 야단친 기억이 없다. 엄마는 어찌 보면 참 이성적인 엄마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가 본인이 치매라는 것을 알면 본인 스스로가 가장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제 엄마는 요양원에 계시니까 나는 엄마를 보려면 면회를 가야 했다.
1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엄마가 좋아했던 간식을 싸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요양원으로 갔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좋아하던 커피를 잊어버리셨다.
식사를 하고 나면 늘 '커피 한잔하자 '하던 거의 습관 같은 일상이었는데.....
나는 혹시나 해서 여러 번 물어보기도 했었다
"엄마, 커피 드실래요? "
암마의 표정은 의문의 찬, 커피가 뭔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 정도로 커피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어쩜 그리 깡그리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하긴 평생의 애증의 대상이었던 딸자식마저도 잊어버렸는데....
우리 엄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치매 증세가 비슷하신 친구의 아버지도 커피를 안 드신다고 한다.
치매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면회 시간은 30분 정도 허락이 되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케이크 한 조각과 따듯한 음료를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간다.
단순한 이야기를 하면서 케이크를 드시면 면회 시간도 끝이 난다.
사실은 엄마랑 할 이야기도 별로 없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웬 모르는 낯선 여자가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무슨 대화가 이루어지겠는가?
언젠가 한 번은 엄마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서 어깨도 주물러보기도 하고 다리도 만져보기도 하는데
엄마는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는 내 손을 치면서 말했다.
" 이제 그만해요 "
엄마랑 단 둘이 있는 면회실이지만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러나 바로 이해가 됐다.
엄마에게 나는 모르는 웬 할머니인 것이다.
엄마의 기억은 아마도 10대 초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 분명히 자신은 어린 소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니 요즘으로 치면 성추행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 엄마는 자신의 집이 육이오 이전 이북에서 살았던 황해도 곡산면 운중리로 알고 있다.
그곳은 엄마가 태어서나 중학교까지 사시던 고향이다.
엄마가 집에 계실 때도 데이케어 센터에서 돌아오실 때면 나를 볼 때 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누구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엄마가 나타내는 친근한 어떤 감정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를 면회하게 되면서는 그런 감정마저도 사라진 것 같았다. 나를 보면 언제나 보였던 희미하지만 따듯한 미소를 엄마는 잃어버렸다.
나는 딸에서 친절한 어떤 할머니에서 이제는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