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 사비나.

by shlee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후배가 몹시도 좋아하는 후배이자 동료였다.

그 둘은 같이 작업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사이였다.

였다라는 과거형의 표현으로 그녀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이다.

그녀가 이 이름을 쓰는 것을 허락할까?

모르겠다.

실은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내 기억으론 두번정도 였을 것이다.

서로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아마도 나는 거의 듣기만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공연을 보고 난 후의 뒷풀이 자리였다.

그녀는 그 공연의 연출이였고 친한 후배는 출연자였다. 뒷풀이 자리에서도 일반 관객인 나는 그냥 관객일 뿐이였다.


젊은 나는 어쩌면 참으로 말이 많고 주장이 강한 편이 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생각이 많아지면서 위축이 되고 그러다 보니 주로 듣는 위치로 간듯 하다.

이것도 물론 내 생각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정반대로 아직도 지나치게 말이 많고 쓸데없이 우기는걸 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그녀가 참 대단하게 산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 때는 정확한 병명을 기억을 하지는 못하겠는데 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져서 머리를 완전히 밀어서 맨 머리 상태로 다니던 상황이였다.

이목구비가 뚜렸한, 게다가 키도 훤칠하게 큰 미모의 여성이 머리 상태가 그러니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게다가 내가 본 그날은 거의 킬힐을 신고 있었다.

나 같으면 아예 아무 일도 안하거나 혹시 사람들을 만나도 가발을 쓰거나 어째든 남의 이목을 피하려고 했을텐데....

남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당당하게 혹은 즐기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그녀는 참 당당했다.


내가 그녀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오랜 기간 후배를 통해서 간간히 들은 이야기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본 일상이 전부이다.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혼해서 집안 일을 하는 걸로 부부 싸움도 하고

식기 세척기를 사서 부부싸움을 해결했단 이야기에 웃기도 했다.

병으로 아프면서도 공연을 한다고 했고 그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잘 살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그녀는 병을 이겨내고 더이상 민머리가 아닌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것은,

정말 말그대로 보기만 한 것이다.

후배가 출연을 하고 그녀가 연출을 한 공연을 보러가서 로비에서 지나가는 그녀를 봤다.


공연은

한 여자의 고단한 삶에 관한.

어린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면서 격는 사회와의 갈등.

통념과의 마찰.

저항.

마지막 장면의 관으로 표현되는 주인공의 죽음.

공연은 좋았다.


어느날 아침.

페이스 북에서 그녀의 소식을 봤다.

그 공연은 그녀의 마지막을 어쩌면 예고한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생의 마지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 세상과의 이별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한참동안은 가끔씩 그녀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떤 사람에겐 상처가 되고 또 아물기도 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상처가 자꾸 깊어지는 것인지 사는 일이 참 오묘하기도 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