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aTina Jan 17. 2023

영웅은 특별해서 영웅이 아니다

<서칭 포 슈가맨> 말릭 벤젤룰 감독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진짜 이름 없이 ‘OO맨’, ‘XX우먼’이라는 다소 신비스러운 칭호와 함께. 익명의 영웅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존경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그들의 본모습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영웅 서사의 특징은 영웅의 캐릭터에 신비성을 더욱 부여한다. 하지만 화면 밖의 관객들은 알고 있다. 도움을 받은 이들이 영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정체는 일반 가정집에 살고 있는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의 주인공인 로드리게즈는 흔한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매우 닮아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다큐멘터리는 영웅 서사의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와 다른 점은 로드리게즈의 업적과 같은 영웅적인 면모를 다루기보다는, 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에 더욱 비중을 두었다는 점이다. 서칭 포 슈가맨에서의 로드리게즈는 유명한 스타 슈가맨이 아닌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과 더욱 닮았다.





전반부. 미스터리한 슈가맨에 대하여



로드리게즈가 남아공에서 영웅이 되었던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당 정권이 실시한 인종차별 정책은 지역민들의 반발을 샀다. 명목상 인종 분리라 명명했던 이 정책은 실질적으로 차별을 위한 것이었다. 유색인들이 이용하는 시설은 백인들의 것보다 열악했으며, 대도시 중심가에 이들이 사는 것도 불법으로 간주했다. 또한 이에 대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대중문화 또한 철저하게 검열되었다.


경계 밖의 세상과 동떨어진 그들의 상황 속에서 로드리게즈의 반항적인 성격의 음악은 크게 유행하였다. 검열된 대중매체에 의해 TV도, 라디오도 접할 수 없었던 세상 속에서 그의 음악은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며 혁명의 씨앗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의문의 음악을 부른 이는 ‘슈가맨’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나의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은 바로 슈가맨 당신이야. 슈가맨, 난 이런 치사한 세상이 신물이 나’
‘파란 동전을 줄 테니 형형색색의 내 꿈을 되돌려 줘’

<SUGAR MAN> 가사 일부




반전으로, 남아공에서 밀리언셀러의 업적을 이루었던 음반은 정작 본토인 미국에서 단 여섯 장밖에 팔리지 않았다. 미국인 여성이 남아공에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해당 음반을 함께 가져가면서 남아공에 기적처럼 전파된 것이다. 확산된 경로 또한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니 남아공 사람들은 슈가맨의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었다. 단서라고는 단 두 장의 앨범과 ‘cold fact’ 앨범 재킷 사진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슈가맨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두 명의 열성팬이 의문으로만 남은 그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발단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단순한 궁금함이었다. ‘맨 땅의 헤딩’이라고, 가사의 일부를 통해 그들은 무작정 슈가맨의 고향을 찾아갔으며, 그곳의 지인으로부터 사실 슈가맨이 미국에서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후반부. 영웅이 아닌 삶을 택했기에


마침내 슈가맨의 정체가 밝혀진다. 창문이 열리고, 로드리게즈의 모습이 드러난다.


슈가맨의 정체는 음악 활동을 그만두고 일용직으로 간간히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본토에서는 흥행한 적이 없던 앨범이었기에, 로드리게즈는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이 영웅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남아공 땅을 밟으면서까지 믿지 못했던 로드리게즈는 그를 아직까지 응원하고, 그의 멜로디와 가사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에게는 앨범을 발표한 뒤로 진정으로 맞이하는 음악인으로서의 삶이었다.


다큐멘터리는 공연 현장의 열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에 대해 열광하고, 로드리게즈는 행복하게 노래를 부른다. 화면 밖에서의 관객들에게도 전율이 전달될 정도로, 로드리게즈를 위한 공연은 누구보다 화려했다. 오랜 기간 동안 연결되지 못했던 무명 가수와 수많은 팬의 접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기적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영웅 서사가 다큐멘터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를 찾는 여정과 죽은 줄만 알았던 영웅의 귀환. 이러한 일련의 놀라운 사건이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하지만 ‘서칭 포 슈가맨’의 본질은 공연이 끝난 후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다. 로드리게즈가 기타 가방을 메고 묵묵히 걸어가는 장면이다.




그의 공연이 끝난 후, 직접적인 질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레 로드리게즈를 향해 암묵적으로 다음 질문을 밝힌다.


"그동안 힘들었잖아요. 지구 반대편에선 영웅이었는데. 이 명예를 더 맛보고 싶지 않으세요?"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화려한 삶을 맛보았지만 결국 원래의 자신의 일상을 선택했다는 것. 본토인 미국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더욱 극적이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메시지를 더한다.


영웅은 특별해서 영웅이 아닌 것. 오히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다큐멘터리의 여운이 더욱 오래 남는다. 그의 노래가 남아공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또한 본토에서의 비슷한 삶을 겪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다큐멘터리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영웅 설화와 같은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다뤘지만, 영웅에게 신비감을 부여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여전히 로드리게즈는 허름한 집에서 컴퓨터나 TV 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그는 남아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남았다. 영웅이 영웅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체의 능력보다는 누군가에게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내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건,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 부부의 고군분투 촬영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