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by 리븐제이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 즈음 되었을까?

핸드폰 화면으로 뜨는 익숙한 이름.


궁금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침착하게 천천히 확인 버튼을 누른다.


'오늘 저녁 몇 시에 마치세요?

제가 내일 연차라 쉬는데 시간 맞으면 동네에서 맛있는 거 먹을까요?

지금 라운딩 가는 중이라 다녀오면 밤 8~9시쯤 될 것 같지만... '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마음으로 흠모하고 기다렸던 그의 연락이었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만나자는 연락에 순식간에 어찌나 설레던지 그간 남자 사람을 만나지 않은 탓이었다.


'저 7시 이후면 끝나요! 라운딩 끝나면 연락 주세요. 저도 내일 쉬는 날이라 괜찮아요.'


보내고 나서도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몇 번의 카톡을 주고받은 우리. 왠지 밤이 기다려진다. 떨린다.

무슨 대화부터 해야 할까. 뭘 먹어야 할까.

점심시간은 지났고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고프던 배도 안 고파졌다.

내 뱃속에서 울리던 꼬르륵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부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바쁜 하루가 마무리되었고 어느덧 시간이 다가온다.

올 때가 됐는데 연락이 안 온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력이 흩트려진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으면서도 떨린다.




어디서 만날지, 무얼 먹을지 연락을 주고받는 와 중에 ‘픽업 갈까요?’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답장을 쓰고 있었다.

‘가시는 길이면요!’

보내자마자 전화가 울린다.


"근처 거의 다 왔는데,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픽업 갈게요!"

“아, 그럼 감사하죠. 00 아파트예요.”

“음, 도착 예정 시간이 9시 3분이네요. 9시에 내려오시면 되겠다.”

“네, 이따 봬요.”


일요일 밤 9시 3분,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마음속으로 상상해 왔던 시간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알고 지낸 지 햇수로 8년. 이렇게 사적으로 약속된 만남을 가진 건 처음이다.




8시 55분에 아파트 정문으로 내려갔다. 오버하고 너무 일찍 나왔나 생각했다.

그래도 기다리게 하는 것보단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주인이 멀리 보이면 너무 반가운 나머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처럼.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그의 차 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나와있는 것을 미처 확인 못한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거는 듯했고 이내 날 발견한 듯했다.

전화벨이 한번 울리고 바로 꺼졌다.


‘어! 왔다. xxxx’


운전석에서 애써 조수석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덕분에 편하게 가게 되었어요.”

“아니에요, 어차피 가는 길인데, 안 그럼 걸어오셔야 되잖아요.”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남자 옆에 앉아있다.

여행 가는 길처럼 마음이 둥둥 뜬다. 기분이 좋다. 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느덧 그의 아파트 단지에 다다랐고 일요일밤이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잠깐의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그는 먼저 말을 꺼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평소에도 워낙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며 대답했다.

기다리는 동안 어딜 가야 좋을지 고민하고 검색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비교적 빠르게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걷다가 눈앞에 보이는 고깃집이 괜찮냐며 물었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첫 식사는 조명이 밝고 연기가 자욱한 갈빗집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오고 가는 말소리에 우리도 쉴 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자상하게 고기를 구워주고 나 먼저 챙겨주었다. 근황을 물어오는 그에게 나는 드디어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최근 나에게 생긴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

내가 모르는 회사의 시스템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본인이 겪었던 고충도 들려준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잔을 부딪혔고 어느새 고기도 다 비워졌다.

적당히 배부르지만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조금 더 시원한 곳에 가서 맥주를 마시자며 자리를 옮겼다.


주문한 얼음 생맥주가 나왔고 뒤이어 안주도 나왔다.


'이 사람 다정함이 몸에 배어있네.'

나도 모르게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에게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우린 새벽 12시를 훌쩍 넘겼다.

애써 하품을 참는 모습을 2번 정도 목격했고 피곤했을 그를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택시를 타고 가야 할지, 걸어가야 할지 고민했는데 신호등까지 같이 가준다고 했다.

큰 사거리 신호등 3개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같은 동네에 산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당연히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는 전혀 몰랐던 눈치였다.




이전 직장부터 단골 고객이었던 그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났다. 물론 사석은 아니었다.

함께 있는 한 시간 동안의 오고 가는 대화 주제는 가볍지 않았으며 언제나 목소리 톤이 부드러웠다.

어떤 날은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늘 응원의 메시지가 돌아왔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기게끔 해주었다. 그런 모습들이 참 다정하고 따뜻했다.

호기심으로 가득했지만 고객과의 만남은 스스로에게 절대 허락하지 않았던 일이기에 조심스러웠다.

언제부터였는지 그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