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에서 아침을

땀은 나지만 적당한 더위

by 리븐제이

샤워를 마치고 글을 조금 쓰고 난 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본격적으로 잠 잘 준비를 마친 나는 필로우 미스트를 뿌리고 눈의 피로를 덜어줄

아이마스크를 끼고 누웠다. 침구는 푹신했다.

여행지에서 내 집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데

이곳은 게스트하우스라서 그런가.

혼자 있지 않다는 안도감,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왜인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가지고 온 아로마오일을 바르고 잠이 잘 오는 수면음악을 들어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아,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낮에 홍차를 먹은 게 화근이었다.

카페인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이라 늦어도 오후 1시 전에 먹어야 그나마 잠을 잘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몇 개월동안 커피를 안 마셨던 터라 카페인과 꽤 먼 사이로 지냈었다.

하지만 감정에 충실했던 나는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피크닉 기분 낸다며 마신 그 한 잔의 짜릿함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다니.


헤이리마을의 밤은 고요했다.

소음이라고는 들리지도 않았다. 고요하고 적막함만 흐르는 공간.

잠귀도 예민한 구석이 있어 집에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 30분에서 1시간은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

내가 사는 곳이야 아파트라 층간 소음이 있고 워낙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많이 들리는 곳이라지만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잠을 못 자기란 쉽지 않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를 곱씹어보기로 했다.

좋았던 순간들을 끄집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고 깨어보니 아침 8시가 넘었다.


수면의 시간은 짧았지만 질은 높았다.

오랜만에 푹 잔듯한 개운함.

역시 침구가 좋아야 하나 생각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헤이리마을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이제 가면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한산하고 조용했다.


오전의 따사로움 거기에 더해 지저귀는 새소리에 갓 나온 빵들까지.

여유롭고 느긋한 일상이 나와 참 맞다고 또 한 번 느끼는 찰나였다.

그 사이사이에 행복을 끼워 넣는 순간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저장된다.


주변을 둘러볼 겸 드라이브를 했다.

평일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 주변 일대가 그랬던 건진 모르겠지만 차도 많이 없고 한적했다.

바래지는 나뭇잎들을 보며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유유자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순간들을 눈에 담았다.

'혼자 너무 잘 노는 거 아니야? 파주 너무 좋은데? 여긴 또 제주도 같네.'등등 혼잣말을 하며

운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년 전 제주살이 할 때의 생각이 나서 피식했다.

행복의 역치가 낮아 자주 행복감을 느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햇살이 눈부시도록 뜨거웠고 강변북로부터 차가 많이 막혔다.

지난날과 같은 플레이리스트가 지겨워 신이 나는 음악으로 바꿨다. 땀은 나지만 적당한 더위였고 짧지만 강력했던 1박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