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가벼운 만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는 편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들여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니, 사실 예전에도 쉽진 않았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남몰래할 수 있는 짝사랑이 편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내내 짝사랑을 꽤 즐겼던 것 같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너 졸업할 때까지 그 애 - 그 당시 좋아했던 남자아이.- 이야기만 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실제로도 그랬으니까.
내가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종종 했었다.
이미 경험자로서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이따금씩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다. 사랑에 빠질 것 같아 두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미어지더라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진짜 나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는 끝도 있는 법이지만 끝을 미리 예측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헤어질 게 두려워 시작도 하지 못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다음 날, 어제 재미있었냐 나는 좋았다는 질문에 그도 좋았다고 대답했다.
뒤이어 나는 동네 친구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어떤 관계의 대해 정립을 하고 싶은 거였군요.’ 라며 좋다고 했다.
관계의 정립?
나는 원체 상상력이 풍부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가족이든 상관없이 애매모호한 행동과 알듯 말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걸 너무 싫어한다. 특히나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더더욱.
생각해 보니 이럴 때 내가 편하자고 하는 행동이 관계를 정립하는 거였다는 걸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해, 내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행동을 했구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한 시간 만나는 그 순간이 나에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당신이 건넨 작은 관심과 응원이 내 마음에 닿아 덕분에 치유받았고 내 인생을 더 잘 살고 싶어 졌다고,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했다고 꼭 이야기해 주고 싶었었는데 그날 밤 나는 그 마음을 전달했고 모든 걸 이야기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시작된 거다. 내 마음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깊이 탐구해야 할 시간이 왔다.
그를 만난 후 나는 계속 그날의 우리를 곱씹어보았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들과 가지고 있던 호기심을 거리낌 없이 나누며 친밀도가 상승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는데 그런 당신을 만나 짧은 시간 많은 대화를 했고 내 마음은 더 커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이성으로써의 감정이 커진 건지, 단지 사람 자체가 더 좋아진 건지 헷갈렸다. 내 마음을 아직 잘 모르기도 했고 섣불리 나섰다가 상처받을까 봐 무섭기도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아직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속에 나오는 대사다.
이 말이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헤어진 그 후부터 계속 그랬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잠도 잘 오지 않고 머릿속과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각자의 일이 있고 생활이 있다 보니 주고받는 메시지의 속도도 더디고 하루에 몇 개 되지도 않았다.
썸도 아니고 그냥 밥 한 번 먹으며 대화한 것이 전부였으며 20대 때처럼 하루종일 연락 하는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기다려지고 기대하는 내 모습에서 '아, 내가 기다림이라는 걸 하고 있구나.' 알게 됐다.
이런 감정들이 불편하면서도 오랜만에 나를 흥분시켰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들어 스트레스받는 것과는 달랐다.
기분 좋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엔도르핀이 돌고 에너지가 생겼다.
우린 정말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그 사람으로 꽉 찼고 내 마음엔 꽃이 활짝 피었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