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샘 May 04. 2022

5월, 아픔과 그리움이 스미는 달

친정엄마의 젊음을 생각하며

우연히 '뜨거운 싱어즈'의 나문희 배우님께서 '나의 옛이야기'노래하는 모습을 뵈었다. 나직이 담담하게  부르시는 모습에  심금을 울리며 감동이 되었다. 노래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에 친정엄마의 젊은날 노래하시던 모습이 그려졌다.  어렸을적, 시골분교에서 어버이날 행사때  노래를 부르셔서 우수상도 하셨다.  무엇보다 나문희 배우님 손마디의 깊고 굵은 주름을 뵈니 친정엄마의 손과 오버랩되며  눈시울이 차올랐다.  훅  그리움이 밀려왔다.



순간 죄송스러움과 미안함이 짙게 묻어났다.


곱고 젊으셨던 엄마의 모습이 아스라이 떠올려졌다.  21살, 경제력 없고 무능력한 아버지한테 시집오셔서 5남매 먹이고 키우시느라 좋은 시절 다 보내신 엄마, 그 시절이 얼마나 덧없고 한이 없으셨을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일이 떠오른다. 내 나이 11살, 가을 추수가 한창일 때였다.

이른 아침부터 엄마를 도와 우리 형제는 논에서 벼 추수를 하였다. 넓은 논의 벼를 고  추수한 벼를 묶고 탈곡기에 돌리고 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드시느라 얼굴 한번 비추지 않으셨다. 그 모습이 답답하고 속상한 나머지 엄마는 아버지에게 아이들도 일하는데 아버지가 집에서 술만 드신다며 한소리를 하셨다. 그 말에 화가 난 아버지는 가스레인지 위에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국솥을 엄마에게 던지셨다.


그 사건으로  엄마는 큰 화상을 입으셨다.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엄마의 옷을 자르고 찬물을 끼얹고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그날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 큰 흉터로 남아버렸다.  엄마의 화상흉터를 마주할 때면 그날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우리 형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버지는 엄마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입에 다물지도 못할 상처만 남기시고 그렇게 눈부신 5월에 떠나셨다. 

늘 술에 의존하셨던 아버지, 알콜중독을 넘어서 결국은 간이 굳어  배에 복수가 차는 간경화로 돌아가시는 날까지 엄마를 고생시키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삶의 무게는 엄마가 짊어지셔야 했다. 하루에 3가지 이상의 일을 하시면서 자식들을 키워내셨다. 새벽 5시에 나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귀가하셨던 어머니...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견디며  얼마나 고단하셨을지 그 깊이는 결코 가늠이 되지 않는다. 늘 부엌에서 숨죽여 우시는 엄마를 마주할 때면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저려왔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 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의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은
 

김진호-가족사진-


곱고 아름다운 청춘을 바쳐 자식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고 그을린 시간들, 그 무엇으로도 채워드리고 보답하지 못해 죄송함이 클 뿐이다.  제주 이주하느라 3월 생신도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함의 크기는 배가 된다.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여동생과 함께 우리 집을 찾을 수 있다는 엄마,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계시다 뵙기를 바라본다. 엄마 손잡고 눈부신 제주의 5월 풍경 함께 하며 그동안  못다 한 추억, 차곡차곡 쌓아보련다. 간만에 엄마의 고운목소리로 불러주셨던  애정하는 노래도 부탁드려봐야겠다.  남은 여생  자식, 손주들과  환하게 건강하게 웃으실 일만 가득하시길 빌어본다.


 꽃처럼 예뻤을 엄마의 청춘에
나라는 꽃을 피워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그립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청보리의 초록숨결,가파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