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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팔 May 02. 2021

여행은 아내가 가는데, 집은 내가 나가야하는 이유

“우리집!”


아내가 결국 여행 일정을 잡은 것 같았다.

친구들과 매년 하는 여행이지만 코로나로 중단되면서 서로 디지털 세상에서만 떠드는게 아쉬웠는지 가까운 곳이라도 짧게 갔다 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모양이었다. 코로나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백신도 접종 중이어서  방역수칙만 잘 지키고 다니면 문제 없을 거라는 자체 예방백서도 내놓는.

  

“그래, 가기로 한 거야?”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면서 물었다.

“응...”

“조심해,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잖아.”

“응....”

“마스크 확실하게 쓰고, 사람 많이 모인다 싶으면 얼른 피하고, 어딜 가도 손소독제 꼭 사용하라고.”

질병 관리청의 예방 매뉴얼을 나는 꼼꼼하게 Guide 한다.

“응...”

 아내의 대답이 그 한마디 외에 더 진전이 없다.

“아니 근데... 왜 표정이 그래? 안 좋아? 그렇게 기대하드니...장소는 어디로 정했어?”  

“...............................”

“아직 정해지지 않은거야?” 재차 묻자 아내는 무겁게 입을 연다. 

“그게......” 머뭇거리며 말을 흐린다.

“왜? 어디 뭐.. 평양이라도 가기로 했어?”

개그 같이 물어본 걸 다큐 보듯 하는 얼굴로 나를 뻔히 쳐다보던 아내의 입에서 튀어나온 장소가 익숙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아차리는데 헛갈린다.


“우리집!”

“우리집? 펜션이름이야? 어디에 있는 건데?”

아무 생각 없이 오징어반찬을 입에 넣으면서 묻자,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난이도 최하인 등급의 우리말을 남편이 이해를 못하는 건지를 의심하며 아내가 대답했다.  

“우리집, 여기라구.”

나는 젓가락을 힘있게 쥔 채 아내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우리집 위치 끝내준다. 지하철 타고 오는데 글쎄 농부들이 보이지 뭐야. 논에다 모심고 있더라구. 얼마나 목가적인 풍경인지 몰라.”

5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후 처음 지하철을 타고 나가면서 차창 밖의 낯선 풍경을 아내한테 문자로 현장 중계를 해줬다. 보이는 사람들 속에 농부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추가되고, 황금들녘이라는 말을 출퇴근하면서 읊조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울 시내까지 걸리는 시간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음에도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숲을 보게 된 기쁨(?)으로 위안을 삼았다. 생활반경도 그렇고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인 아들녀석들은 다니기 힘들어 독립해서 살겠다고 투덜거렸다.

갑갑함과 향수에 묻혀 살던 처음이 지나고 몇 년 후인 지금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자연을 보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정을 붙이고 살면 어디든 고향이라고 오리저널 트롯트의 가사를 떠올리며 이제는 반대로 사시사철의 자연 풍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도시의 거친 질감을 온종일 눈에 담고 있다가 터널을 지나면서 바뀌는 세상에 눈은 어느새 정화된다. 음악으로 친다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을 듣고 있다가 포크송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단 말이라구.”

아내의 대답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략과 절제된 한마디로 묻는다.

“뭔소리여 그게?”

숟가락을 막대기 쥐듯 하며 물었다.  

“처음엔 어디 갈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돌아다니기가 찝찝해서... 그리고 예전부터 얘들이 우리 집에서 한번 모이자고 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했거든.”    

“그럼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나?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더 안 좋아진 거 아냐?”

내 질문이 심문으로 바뀌는 듯 하자,

“그러니까. 자꾸 미루다 보면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정했어. 그래서 집으로 한 거야.”

아내는 이 저질러 논 사태를 빨리 수습하려 별로 설득력 없는 변론을 해댄다 .

“왜 특별시민 아줌마들이 광역시에서 놀려고 그래. 볼 게 뭐가 있다구.”

나는 계속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집이 딴 애들 집보다 그나마 좀 교외잖아. 조금이라도 공기가 좋으니까 그렇겠지.”

맞받아치는 아내의 진지한 농담에 어이가 없어 한다.

“그러고 개네들 집은 우리 집보다 작아서 들어앉아 놀기가 힘들어.”  

우리 집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이민다.

“누가 들으면 우리가 별장에서 사는 줄 알겠구먼.”

나도 살짝 비꼬는 투가 나온다.

“그 친구들 집은 작아도 우리 집 2, 3채 값하고 맞먹을걸. 요즘 서울 집값이 어디 집값이여?"

아내는 내 부동산 얘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여행지로서의 우리 집만 들먹이고 있다.  

“어차피 여행가도 숙소에서 얘기만 하다 올건데 뭐.”

“암튼 아줌마들이란... 그렇게 모여서 수다만 떠는 게 무슨 여행이야. 그러니까 아줌마들만 조용해지면 세계평화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나오는 거라구.” 결국 아내로 대표된 여성의 정체성까지 들먹거려 아내를 자극한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당신도 가만히 보면 여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조금 전까지 남편의 양해를 구하던 아내의 태도가 180도로 돌변한다.

아무래도 장기전에 돌입할 기세라 내가 한발 물러선다.

“그래, 그래. 알았어.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걱정했었는데... 잘했어. 나도 그게 안심이 된다. 그냥 하루 집에서 놀아. 난 나갔다 밤늦게 들어올 테니까. 하루쯤 희생하지 뭐.”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다시 밥을 입에다 열심히 퍼 넣었다.

“저기...근데...”

아내의 말투도 수그러들었지만 내 동의에도 별로 반가운 기색이 없다.

“왜? 뭐? 또 있어?”

밥을 씹으면서 뭐 씹은 듯한 아내 얼굴을 쳐다보자

“1박 2일이거든.”

"근데?"

아내는 여전히 언어 이해도 및 대화 적응력을 의심하는 거 같았다.

"다들 우리집에서 잘꺼란 말이라구!"

나는 또다시 숟가락에 힘을 준다.

“우리 집에서?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이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오면서도 갑자기 오래전 유행가 가사가 떠올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잠시 얼굴이 묘한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당신은.... 어디 1박 2일로 여행 갔다 오면 안 돼? 어치피 주말인데.

“그러니까 여행은 당신이 하면서 집을 떠나는 것은 나다? 무슨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다 있어?“

“당신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잖아. 혼자도 자주 다니면서... 혼자가 싫으면 같이 갈 친구 좀 알아보던가.”

알 수 없는 두께의 아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만기가 다 됐으니 방빼 달라는 주인아줌마 같아 보였다. 그것도 전세값을 꼭대기까지 올려놓고 빼도박도 못하게 만든.

“아니, 여행이란 게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는 거지 이건 내쫓겨나는 거지. 여행이 아니라 유배 가라는 거잖아.”

아내와 말다툼하는 건 탐탁하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밥상을 마주한 체 본격적으로 내 밥알이 사방으로 날리고 아내의 침이 튀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멀리 유배지를 잡은 것 같았다. 이왕 쫓겨나는거 갈 때까지 가보자. 오기가 났다. 나도 한 성질 한다는 걸 보란 듯 홧김에 나왔는데 산 넘고 물 건너 한참을 가고 있다. 그렇게 집을 나왔다. 주말이라 친구 녀석들에게 전화해

"오늘 우리 같이 잘래?"

라고 말하면  멀쩡한 밥 먹고 실성했냐는 소리나 들을 건 뻔하고 남사스럽기도 해서 혼자 떠나기로 했다.

벌써 내 편한 잠자리가 그리워진다. 집에 기어들어가 아내의 친구들과 손뼉 치며 쎄쎄쎄~라도 하면서 묻혀가지 않는 이상 어쨌건 죽으나 사나 1박 2일이란 자유이면서 아닌 듯 한 시간이 내 앞에 주어진 건 분명했다.


빗방울이 부딪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우리집 가는 길과 별로 다르지 않은 한적한 시골 풍경이 비와 함께 을씨년스럽게 흘러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 말대로 가끔 혼자 여행을 즐길 때면, 매번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볼 일보고 닦지 않는 뒤처럼 찝찝함을 달고 다녔는데 이건 아내가 공식적으로 허락하는 자유 아닌가. 어쩌면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들여 나를 잠시 놓아준 아내의 속 깊은 배려였을 것이다.

사실 뭐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단번에 순순히 수락을 해주면 우리 대화가 싱겁게 끝날테니까 일부러 거친 말투로 무한의 관심을 보이다 한발 물러서서 오랜만에 친구들과 집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아내의 요구를 수용해 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물론 나는 여행이라는 결과물을 얻어 마음 편히 떠날 수 있게 된 것이고... 

시 우리 부부는 서로를 너무 이해해주고 챙겨주는 사이가 아닌가 싶다.


갑자기 1박 2일 짧게 느껴졌다. 서둘러 즐겨야 한다. 아내의 배려에 보답을 해야 한다. 아내에게 얘기 해줄 즐거운 추억거리를 쌓고 돌아가야 한다. 남편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관심 없이 집 안에서 방콕 여행을 즐기고 있을 아내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멋지고 완벽한 나 홀로 여행 안으로 들어갔다. 

꿈보다 해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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