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쉬운 게 아니구나.
"참 재미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밀린 일기 숙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문장이었다. 늘 그렇듯 적힌 날씨는 내 마음대로였고, 기억마저 흐릿했지만. 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친구와 싸웠건,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건 그날 하루 내 기분이 얼마나 최악이었건 간에 마지막은 언제나 '참 재미있었다.'였다. 수십 명 각기 다른 아이들의 똑.같.은.마.무.리 일기 숙제를 매번 검사했던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곱씹어본다.
이제 난 성인이 되었고, 참 재미없는 하루를 버겁게 넘기고 있다. 커피숍을 운영 중이고, 그 덕에 장사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하고 또 현실의 냉랭함이 칼날의 그것보다 예리하고 에이는 상처를 남기는지 절절이 느끼고 있다.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에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날이면. 아니, 그보다 '어제는 이래서 손님이 없었어, 오늘은 저래서 한가한 거야.' 라며 자위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심신의 고단함이 배가된다만 핑계 대는 것도 지치는 무료한 오후의 한가운데 멍하니 창 밖을 응시하면 한숨마저 사치가 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브런치에서 쪽지가 날아왔다. 60일 간 글을 기고하지 않았더랬다. 글쎄, 두 달 사이 무슨 일이 있었지? 벌써 시간이 그리 흘렀나?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넘기며 모레를 버티는 삶을 살아온 듯하다. 고지서의 장 수와 적힌 숫자들과 씹어 삼키는 알약이 늘어갈수록 둔감해지는 나의 꿈과 목표, 또는 열정에게 부끄러움보다 어느새 변명이 먼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다들 힘들어 인마." 위로하는 친구의 술잔조차 달갑지 않은 요즘. 가게 문을 열고 닫고, 똑같은 매일을 보낸다만. 포스기에 찍힌 매출에 집착하고 이내 눈물조차 말라버린 무표정에 나를 보며, 초등학생 시절의 무엇이든 '참 재미있었던'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너도 참 시시한 놈이 되어버렸구나,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한심해할까 위로해줄까. 차마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버린 과거의 나에게 도망치듯 소주를 들이켜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이렇게 현실 틈바구니에서 아웅다웅 버티며 하루를 견딜까,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고 미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자꾸만 내 안에서 문제를 찾기보단 늘 그랬듯 치사하고 야비하게 상황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니 발전이 없지.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찾고 그 '약발'이 길어봤자 하루, 채 작심삼일 조차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또는 애써 잊어버리며. 또 누구를 탓하지 하는 얄팍한 생각마저 사그라지는 무심함의 60일이었다 자평해본다.
장사가 별 거냐, 코웃음 쳤던 철없던 나였다. 아니, 회상해보니 장사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었다. 아이구, 내 글자들이면 사람들이 끔뻑 죽어나가겠지. 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고 사인회도 다니며 인세로 여행도 다니고, 그저 탄탄대로 일 거야. 오만 방자했던 내가 열 다섯 평 남짓 커피숍을 일 년 동안 운영하며 느낀 점은 하나. 삼천 오백 원의 소중함.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얻기가 이렇듯 힘들다는 것. 미소 한 번의 무거움, 내가 지킨 약속의 대한 막중함. 그리고 지금도 제일 아린, 앞으로도 범접치 못할 아버지의 뒷모습.
잔인한 9월, 마수조차 못한 25일. 스스로가 버거운 하루. 도피처는 존재치 않고 활주로는 내 안에 있다는 사실. 푸념 한 스푼 떠먹을 시간에 창문을 닦는 것이 중요하단 걸 깨달은 오늘 하루.
생존신고를 하며 다시 한번 이렇듯 일기를 써보려 한다.
다 잘 될거라 주문을 외우듯.
오늘 하루, 힘들고 피곤했지만 "참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