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 오기 한참 전부터, 그러니까 한국에 있을 때에도 나는 내가 담근 파김치를 참 좋아했다. 어느날 티비에서 전현무가 파김치 담그는 걸 보고, '아니 전현무가 하는데 내가 왜 못해?' 정신이 작동하여 시도해보았던거다. 전현무는 이영자의 레시피로 만들었다했고 나도 이영자 레시피를 검색해 만들었다. 이영자 레시피에서 파김치의 핵심은 꽃게액젓 이었다. 다른 젓갈이 아니라 꽃게액젓을 쓰라고, 그래야 감칠맛이 기가 막히다는거다. 당연히 시키는대로 꽃게액젓을 사려고 햇지만, 이영자가 그렇게 말한 뒤여서 그런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통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멸치액젓으로 대체했는데 맛있게 먹었다. 두번째 담갔을 때에는 꽃게액젓을 구했다. 오, 어쩐지 더 맛있는 기분이야. 이영자 레시피에는 배pear 도 갈아 넣어야 했는데, 파김치 담글 때 배가 없어서 '갈아만든 배' 음료로 대신한 적도 있다. 그 때는 좀 별로였다. 갈아만든 배 보다는 확실히 진짜 배가 낫구나. 나는 내가 치아바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치아바타를 안사먹고 스콘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콘을 안사먹는다. 내가 만든게 더 맛있는데 도무지 사먹을 의욕이 안생기는거다. 저걸 사먹는다고? 이런 마인드가 되어버린거다. 파김치도 그랬다. 파김치는 내가 만든게 제일 맛있었다. 그전에는 파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내가 만들기 시작하고부터는 너무 맛있어서 자꾸 담그게 됐다. 남동생은 파김치를 아주 좋아하는데, 내가 만들어주면 정말 좋아라 했다. 사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나는 파김치를 담가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만든 파김치가 먹고 싶었다. 처음엔 10월에 한국 들어갔을 때, 그 때 만들어서 싱가폴에 가져갈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김치를 수트케이스에 넣고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게 영 저어됐다. 그 안에서 팍 시어버릴 것 같은거다. 난 파김치가 팍 시어버린 건 싫어하기 때문에 이건 시도하지 말자 싶었다.
싱가폴에서도 파김치를 사먹고 싶다면 사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지난번 한국식재료 파는 곳에 갔다가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먹기는 싫었다. 내가 사먹는 파김치도 먹어봤는데 영 내 타입이 아니었거든. 난 갓 담근 파김치, 내가 만든 파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시도해볼까?
일단 이영자 레시피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꽃개액젓, 매실액, 배, 양파, 생강, 새우젓, 고춧가루 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매실액, 배, 생강, 새우젓이 없었다.
매실액의 역할은 뭐지? 여동생은 '단 맛과 발효'일거라고 햇다. 흐음. 내가 없는게 너무 많지만,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다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이모가 직접 빻아준 고춧가루, 참치액젓 뿐이었다. 생강 대신 다진 마늘을 넣자. 양파도 넣고 갈아야 하지만.. 나에겐 믹서가 없잖아. 그러면 잘게 썰자. 배도 그렇고 매실액도 그렇고 단맛 때문에 필요한걸텐데, 그러면 단맛을 넣어주긴 해야겠고.. 설탕을 넣어보자. 그렇게 나는 마트에 가서 파를 사오고 재료를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재료는 이렇다.
고춧가루, 참치액, 양파, 마늘, 설탕
어디 되는지 안되는지 한 번 보자, 하고는 나는 이 재료들을 다 섞어서 파를 잘라 슥슥 버무려주었다. 그렇게 나의 파김치가 완성되었다.
어디 한 번, 하고 맛을 보니, 어어 맛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나는 파김치 삼겹살 한 상을 차려냈다.
꺅 >.<
너무 신나는 저녁이었다.
식탁에는 내가 끓인 김치찌개와 내가 구운 삼겹살, 그리고 내가 만든 파김치가 올려졌다. 지난번에 한국에서 친구가 올 때 가져다준 소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으하하하하하. 아주 꿀맛이었다.
파김치 너무 맛있어서, 밥 먹을 때도 먹고 라면 먹을 때도 먹었다. 오늘은 아침에 비빔국수 해먹었는데, 그 때도 같이 먹어서 이제 파김치 다 먹었다. 파김치가 있으니 비비고 배추김치를 먹지 않게 되더라. 비비고 배추김치를 여기서 어쩔 수 없이 사먹긴 하지만, 사실 내가 맛있게 먹는 김치는 아니다. 내가 만든 파김치가 비비고 배추김치보다 맛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파김치 또 담가야겠다.
내 파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저 부족한 재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젓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거의 확신에 가깝다. 젓갈만 있으면 되었다. 다른건 다 거들뿐. 젓갈이면 김치는 완성되는 거였어! 젓갈의 킥이다. 젓갈이 메인이야. 젓갈 덕분에 내 파김치가 제 맛을 낼 수 있는거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젓갈이 있다면, 젓갈이 있다면............ 배추김치도 해볼 수 있지 않아?
라는 생각. 어차피 젓갈하고 고춧가루가 있으면, 다 되는거 아니야? 알배추 사다가 한 번 만들어봐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머릿속에는 배추김치 생각이 가득하다.
하- 해외살이 6개월 하는건데, 참 요란하게 살고 있다. 3개월차에 파김치도 담그고 말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