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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어학연수] Kimchi

by 다락방

언젠가부터 배추 김치를 담가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캐나다에 사는 한 백인 남자의 김치만드는 영상을 보고난 뒤부터였다. 그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대로 보이는 캐나다 백인 남자가 캐나다의 자기 집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만드는 거였다. 재료들을 믹서에 넣고 갈아 양념장 만드는 것도 해내고 그렇게 김치를 버무려서 통에 넣고, 그걸 수시로 꺼내어 반찬으로도 먹고 김치 찌개도 만들어 먹고 라면과 삼겹살과도 먹더라. 그의 그전 영상을 처음부터 본 게 아니어서 그의 히스토리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다던가 유학을 했다던가 하면서 한국 음식에 맛을 들인게 아닌가 싶다. 캐나다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배추도 사고 냉면도 사고 한국음식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심지어 김치를 담근다니까?


그걸 보자마자 '아니, 젊은 백인 남자가 하는데 내가 왜 못해?' 마인드가 발동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해봐야지, 하면서도, 그런데 너무 거창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실행에 바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 엄마가 김치를 담그실 때 보면, 뭔가 큰 마음 가짐이 필요한 것 같았거든. 절구고 양념장을 믹서에 넣어 갈아서 만들고, 양손으로 버무리고..


그런데 싱가폴 싱글라이프가 내게 바로 지금이 김치를 담글 때라고 말해주었다. 바로 지금이야, 바로 지금!


싱가폴에 와서 종가집 김치나 비비고 김치를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김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김치가 없으면 안돼.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부터 물리는거다. 이 김치 먹기 싫어, 이렇게 되어서 나는 파김치를 담갔더랬다. 제대로 된 재료가 모두 구색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파김치가 파김치 맛을 내는걸 보면서, '김치는 젓갈과 고춧가루만 있으면 되는거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바로 배추김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유학생들이 스스로 김치를 담가 먹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니 그들을 위해 간단한 재료로 만드는 레시피들도 존재했다. 나는 그렇게 찾아낸 레시피의 재료들을 훑어보았다.


젓갈, 고춧가루, 생강가루, 매실액, 설탕, 대파, 마늘..


생강가루가 없지만 마늘이 있으니 이건 괜찮고, 매실액이 문제였는데, 흐음, 매실액? 이건 생략하자. 그런데 나는 설탕을 넣기가 싫으니까, 어쩐지 배추김이 담글 때 설탕 넣는다는게 좀 그래? 엄마는 과일을 넣으셨는데. 엄마는 그게 어떤 김치냐에 따라서 배나 사과 혹은 무우를 갈아 설탕 대신 넣으셨다. 배음료라도 싱가폴에 있다면 좋겠지만 배음료는 한국에만 있는거잖아? 나는 그래서 사과를 그냥 썰어서 넣기로 했다. 결국 내가 준비한 건,


배추, 고춧가루, 젓갈, 사과, 양파, 쪽파, 마늘


일단 배추는 1/4 조각을 사왔다. 한 포기는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먹는게 감당 안되는 게 아니라, 이걸 버무릴 통이 없었던거다. 그래서 저만큼을 샀는데 흐음, 나머지 양념장의 양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지? 해서 원래 레시피 보면서 대충 이정도로 하자, 하고 준비했다. 일단 배추를 썰어서 씻고 소금에 절여두었다. 한시간 좀 지난 후에 거기에 내가 준비한 양념을 다 때려넣었다.


tempImageSfGt8s.heic 배추를 아직 절구기 전, 씻어둔 상태다.
tempImageRYcZhg.heic 모든 재료를 넣고 버물버물하니 이런 끝내주는 색이 나왔다.
tempImagexM6VfO.heic 너무나 아름다운, 나의 완성된 배추김치!


그렇게 버무리는데 점점 색깔이 예뻐지는게 눈에 보여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버무렸다고 생각됐을때쯤 하나 입에 넣었더니 아.. 좀 짰다. 이걸 어쩐담? 배추를 사서 더 넣어야 하나?


나는 엄마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무우를 사서 넣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 하셨다. 그런데 무우를 좀 넣으면, 남은 무우를 내가 수습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뭇국 끓여먹는 건 한 두번일텐데 어떻게.. 그러자 엄마는 양파를 좀 더 썰어넣고 설탕도 넣으라고 하셨다. 설탕이 짠맛을 조금 잡아줄 거라고. 내가 김치에 설탕 넣기를 싫어했건만, 결국 이렇게 넣게 되는구나. 그리고 엄마는 하루 정도 익혀보라고 하셨다. 익히면 좀 덜 짜진다고. 그래서 나는 양파를 좀 더 넣고 설탕도 넣어 다시 버무렸다. 여전히 좀 짰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지 않고 익게 실온에 두었다.


다음날인 오늘 아침, 어느정도 김치가 익어 있었다. 여전히 짠 맛이 남아있었지만, 밥하고 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사실 좀 짜서 그렇지 진짜 맛있었다! 비비고와 종가집에 안녕을 고했다. 너무 맛있는데? 다음에 젓갈 양만 조금 더 조절하면 진짜 맛있겠어!!


친구에게 완성된 배추김치 사진을 보내니 정말 유학생인 것 같은 실감이 난다고 했다. 하하하하. 나는 정말 유학생이 되었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중요한 코스중 하나였던 것.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이렇게 김치를 한 번 담그고 보니, 젓갈과 고춧가루만 있으면 세상 쉬운데, 사람들아 김치 담가먹자!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영상도 찍어보았다.


https://youtu.be/tV4OmE6S2_E


껄껄.

이렇게 싱가폴 싱글라이프가 무르익어간다. 샤라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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