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존》
'존'은 친구들과 늘 모여 여자들 몸에 대하여 점수를 매기고 성적 대상화시킨다. 남자들끼리 이러는 거야 뭐 어제오늘 일이 아니겠지만, 자꾸 보이는 그런 모습들은 좀 구역질 난달까. 게다가 남자 주인공 '존'의 아버지도 다를 바 없어, 아들인 존이 데려오는 여자 친구를 아래위로 훑으며 '귀엽'다고 한다. 그런 식의 시선으로 훑어보는 남자 친구의 아버지라니, 나는 여자 친구에게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소리지르는 폭력적인 존과 존의 아버지라니. 혹여라도 결혼하게 된다면 저 시선을 늘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존은 바텐더로 일하면서 늘 춤을 추러 다니고 여자들 몸에 점수를 매기며 하룻밤 자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점수 높은 여자랑 섹스를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그가 늘 찾아보는 포르노다. 포르노를 보며 자위를 하는 것이 실제의 섹스보다 훨씬 더 큰 만족도를 준다. 그래서 아무리 섹시한 여자랑 섹스를 하고 침대에 그녀가 누워있어도 그는 거실로 나가 포르노 사이트에 다시 접속, 혼자 만족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랑하는 여자 '바바라'가 생겼지만, 바바라에게도 예외는 없다. 존은 바바라가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에도 거실에서 포르노에 접속한다. 이 모습에 바바라는 실망하고 그와 헤어진다. 포르노를 보는 남자는 바바라가 바라는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포르노를 보는 남자는 결국 여자도 포르노 랜드에서 살게 하니까.
남자들은 포르노 이미지가 뇌에서도 ‘판타지‘라고 표시된 구역에 갇혀 있으며 현실 세계로 새어 나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는 남자 친구가 점점 더 포르노 섹스를 요구한다는 여자 학생들의 사연을 지겹도록 듣는다. 그것이 얼굴 사정이 되었든, 항문성교가 되었든, 이 남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포르노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 처음에는 그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산업이 생생한 포르노 이미지가 실제로 자신의 사적 관계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점점 더 많이 들린다.- 《포르노랜드》, 게일 다인스 지음, P162
포르노를 이용하는 남자들이 모두 이러한 강간 신화를 통째로 삼킨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식의 주장은 이용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며, 포르노의 영향에 관한 논의를 단 하나의 영향-강간-으로 축소하게 될 것이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그러한 신화가 홍보하는 문화가 수많은 방식으로 남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부는 강간을 저지르겠지만, 더 많은 이들이 파트너에게 섹스 혹은 특정 성행위를 해 달라고 애원하고, 조르고, 강요할 것이며,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다른 인간 존재와의 섹스 그 자체에 흥미를 잃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자를 이용하고 다 끝나면 그를 무시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파트너의 외모나 성 기능을 평가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여자를 일차원적인 섹스 대상이자 남자만큼 존중할 필요도, 존엄하지도 않은 존재로 볼 것이며, 이는 침실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 《포르노랜드》, 게일 다인스 지음, P210
현실에서 여자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고도 그것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데, 오늘날 포르노의 이미지, 재현, 메시지가 대중문화를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자들은 여전히 하드코어 포르노의 주요 소비자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게 모르게 포르노의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하고 있으며, 대개 이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하면 섹시하고, 도발적이고, 쿨하게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또 가능하다면 붙잡아 둘 수 있는지)에 관한 충고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음부 왁싱이다. 음부 왁싱은 포르노에서 처음 보급되어 『코스모폴리탄』같은 여성 매체로 흘러 들어갔는데, 이 잡지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려면 해야 할 ‘자기 관리‘방법에 관한 기사와 팁을 정기적으로 싣는다. - 《포르노랜드》, 게일 다인스 지음, P217
그런 존에게 야간대학에서 같이 수업을 듣다 만난 '에스더'는 존이 포르노 중독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존은 그 말을 웃어넘기지만, 자신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에스더의 말대로 포르노를 보지 않으면 자위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포르노를 끊기로 결심한다. 이에 에스더는 존에게 말한다. 현실의 섹스는 포르노와 같을 수가 없다, 네가 포르노를 보며 만족하는 게 너 자신을 잊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네가 섹스로 너 자신을 잊어야 한다면, 그건 네가 사랑하는 여자 안에서여야 한다, 너는 여자랑 섹스를 한 게 아니라 너 혼자 일방적인 섹스만을 한 것이다, 그런 섹스가 너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감을 한다면, 다르다, 고.
존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잘 몰랐지만, 에스더에게 '사적으로' 다가가고 그녀의 상처를 알게 되면서 생애 처음, 그동안의 섹스와는 다른 섹스를 하게 된다. 아, 이건 달랐어. 그러자 그가 세상을 보고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운전을 하면 늘 분노가 차올랐던 그였지만, 이제 운전을 하면서 욕을 하고 핸들을 탕탕 치는 대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른다. 헬스장에 가면 자기 운동하기에 바빴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농구를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자들하고 눈 맞추는 건 싫었'는데 이 여자랑은 자꾸 눈을 맞추고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여자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내 생각을 아는 것 같고, 자신이 그녀의 생각을 아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야 '사랑을 나눈다'에서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와 함께 미래를 설계한다든가 하는 구체적인 어떤 것들을 말하진 않았지만, 이 교감이 '미치도록' 좋다고 그는 말한다.
너무나 바람직한 결말이지만 포르노 중독이었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교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인 건 아닌가 싶다. 당연히 그런 결말로 가야겠지만, 당연하다고 모두 그렇게 되지는 않을 터. 영화는 교감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하면서 포르노를 반대하는 데 한표 보탠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게일 다인스의 표현대로라면 이 영화는 희망적인 시작일 것이다.
우리 문화의 포르노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내게 마법 같은 해결책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우리는 거대한 경제 구조와 맞닥뜨리고 있다. 포르노 산업과 싸우려면 개인으로서, 그리고 집단적 운동으로써 저항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저항은 개인적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희망적인 시작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는 포르노를 이용하는 남자와 데이트하지 않겠다는 여자 청년, 자녀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길러주는 모부,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교사, 섹슈얼리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포르노를 보이콧하는 남자도 있다. 더 넓은 층위의 사회적 움직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러한 개인적 형태의 저항이 현재로서는 가장 의미 있다. 《포르노랜드》, 게일 다인스 지음,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