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모리스는 대학에 다니며 클라이브랑 사랑을 하게 된다. 남자와 남자이니 동성애다. 그들은 3년간 사랑을 나눈다. 그들에게 생애 처음 사랑이었고 또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라이브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모리스는 예전처럼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클라이브는 묘하게 달라졌어. 그러더니 클라이브는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이제 자신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를 사랑했던 그는, 이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다. 동성애는 감춰야 하고 병이고 죄악이었던 그 당시에 클라이브는 자신이 이제 '정상'이, 무려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거다. 그러면서 모리스에게 이별을 말하는 거다.
이것은 모리스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랑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성(SEX)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고 하니, 대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앞으로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태 이성애를 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가족이 아닌 타인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애하던 시절 나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고 이성(SEX)적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애를 했다. 우리는 그 시절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며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는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만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 사랑을 줬고 열정을 줬다. 시간과 에너지도 줬다. 우리가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와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어느 날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이제 더 이상 너랑 연애를 할 수 없어, 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 걸까. 나는 어쩌지? 다른 성(SEX)을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 '나에게로 돌아와'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먹힐까? 아예 성적 취향이 바뀌어버린 건데, 그런 사람에게 나에게 돌아와, 우린 다시 사랑해야 해, 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클라이브는 이제 '정상'이 되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리스와의 사랑도 끝나버렸다고. 그러나 모리스에게 이 얘기는 갑작스럽고 모리스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내 사랑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정리가 되었고 다른 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연히 모리스는 클라이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클라이브가 여자랑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을 때 조차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그 기대는 그렇게나 오래간다. 그러나 클라이브에게 동성애는 이제 역겨운 것이 되어있고, 모리스가 어서 빨리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클라이브와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가 이제 그 누구보다 멀어진 사이가 된다.
그러나 클라이브가 모리스를 사랑했던 시절, 그 강렬한 우정은 진짜였으므로,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다시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모리스의 동성애를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모리스의 사랑, 모리스의 성적 취향은 고쳐질 수 없는 그 자신만의 것이었다. 선천적인 것이었다. 그런 모리스 안에는 다른 남성을 향한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플라토닉 한 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는 그 모든 걸 나눌 애인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 치료도 받으려 해 보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모리스가 되어, 나에게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나의 이성애인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다음에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는데, 너는 성적 취향이 바뀌었다면,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돌아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니까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다른 사랑을 하는 거라면, 기다릴 수 있다. 어쩌면, 그 언젠가, 먼 훗날에라도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쯤은 있는 거니까. 동백이 엄마는 용식이에게 '기다리면 안와, 기다리는 사람은 쳐들어오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라고 하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조금쯤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그가 좋아하는 성별에 내가 속하니까.
그러나 그가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나의 기다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나는 거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가 이성애를 하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듯이, 다시 이성애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만약 그가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나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이 끝나버렸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친구로 남는 방법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클라이브는 모리스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모리스는 클라이브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이브와 모리스의 관계는 나와 그의 관계와 다르고, 나는 모리스가 아니다. 나는 될 수 있다. 나는 가끔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내 안에 애정으로 그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며 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이성애적 사랑을 접고, 연인의 포지션은 세이 굿바이 해야겠지만, 친구의 포지션으로 새롭게 헬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잡아도 소용이 없잖아. 그러면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라는 포지션을 내 안에 되새기면서.
"그러면 우리 좋은 일 있으면 알려주는 사이가 되자."
"그래."
"음, 나쁜 일도 알려주자, 그냥 일어나는 일 모두 다."
"그게 사귀는 거랑 뭐가 달라."
"그러면 30프로만 이야기하자."
"알았어."
우리는 그렇게 오래오래 친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동성애인을 질투하게 될까? 모르겠다.
모리스는 스물네 살이다. 새로운 애인을 만났다. 모리스는 젊다. 나는 모리스가 참 젊구나, 생각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그는 이미 성숙한 어른이지만,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보는 모리스는 젊다. 계급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면서 가진 모든 걸 버리고 우리 함께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데에서는 아, 나는 그가 한없이 젊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그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답이었을지도 몰라. 현실감각 없이 무조건 사랑하니까 우린 함께하자, 라는 것이 궁극적 답이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어야 했을까?
나는 아무 상관없어. 누구라도 만날 거고, 어떤 일도 피하지 않을 거야. 의심하려면 의심하라고 해. 그런 건 이제 지겨워. 형한테 표를 취소해 달라고 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그게 바로 우리가 자유를 얻는 출발점이 되는 거야. 그러고 나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거지. 모험이지만 이 세상에 모험 아닌 일은 없어.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잖아. (p.329)
그러게.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선택들을 하고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최선이었을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최선을 선택한 걸까? 이게 맞는 건가? 이게 나한테 더 나은 건가?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모리스와 그의 애인에게는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 그러니까 모리스가 '그가 어디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올릴 수 있는 장소. 약속을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딜 가야 그를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는, 그가 있는 장소, 그가 있고자 하는 장소, 그에게 그곳에서 만나자, 했던 바로 그 장소, 펜지의 보트하우스.
아주 오래전부터 나도 펜지의 보트하우스 같은 장소를 꿈꾸었다. 나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거기에 가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를 만날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애인과 있었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또 돌이켜보아도 나는 그런 장소를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장소가 없었으니까. 올림픽공원의 어느 호수 앞 벤치, 이런 거 정해뒀으면 좋았을 텐데. 함께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으면서, 나는 외로울 때면 항상 여기를 와요,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게 꿈이었어, 나는 모든 생각을 여기에서만 해, 나는 여기에 오면 마음에 안정을 찾아, 여기 이곳을 내가 무척 좋아해, 여기서 저 호수를 바라보면 그곳이 천국인 것 같아, 나는 주로 여기서 시간을 보내, 여기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완벽해, 나는 항상 당신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 나만의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에게 그걸 언급한 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만나고 싶어 질 때, 그러나 대체 어디로 가야 나를 만날지 알 수 없을 때, 아 맞다 거기에 가면 그녀가 있어! 이런 거 확신하고 달려올 수 있을 텐데. 다다다닥 숨이 차게 뛰어 오면 벤치에 여느 때처럼 가만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혹은 책을 읽는 나를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그는 가쁜 숨을 다독일 수 있을 텐데. 헉헉, 숨을 내쉬면서 진정시키고, 여기에 오면 너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기에 있는 건 변함이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에 있는 거 알면서 왜 뛰어왔어, 하면서 내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가만 옆에 와 앉는 그에게 손수건을 건넬 텐데. 땀 닦아, 냄새난다...
(응?)
모리스와 애인에게 펜지의 보트하우스가 있는 게 너무 부럽다. 너무 부러워.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 나도 갖고 싶어, 펜지의 보트하우스. 그리고 그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도 몰라, 나는. 그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그가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몰라. 아, 자기 방 침대… 그런 거 말고. 나도 그런 거 있어야 되는데, 오고 싶을 때 와서 나 만날 수 있게.
자, 잘 들어라.
내가 이제 말해줄게.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를.
어디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말해줄게.
약속 없이 나를 만나려면 어디로 와야 하는지 말해줄게.
잘 들어, 두 번 말하지 않아. 이 여자가 어디 있을까, 어디로 가면 이 여자를 볼 수 있을까, 안타까워 뛰어오고 싶다면, 나는, 바로, 언제나,
회사에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일곱 시 반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그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회사에 있다!
내 사무실로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말고, 어디에 있을까 발 구르지 말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애태우지 말고, 그냥,
회사로 와! 내 사무실로 와! 내 회사가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