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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 Dec 08. 2020

나는 충분하지 않은가요?

《다 잘된 거야》

《다 잘된 거야》,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작가정신, 2016

'엠마뉘엘'은 동생 '파스칼'로부터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병원에 바로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다다다닥 나가다가, 뉘엘은 자신이 콘택트렌즈를 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올라가 렌즈를 낀다. 그리고 내려와서는 택시를  잡으려다 줄이 길어서 지하철이 더 빠르겠다 하고는 지하철을 타러 간다. 아버지는 괜찮을 거야, 자신에게 속삭이다가, 무슨 일이  있었으면 파스칼이 연락을 했겠지,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와의 어릴 적 일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어서 빨리 병원에  닿기를, 어서 빨리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제 눈으로 확인하길 원한다. 그렇게 지하철 안에서 끊임없이 마음이  소란스러운데,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나는 덩치 큰 남자 옆에 앉는다.

지하철 신호음, 열차의 문들이 닫힌다.

옆의 남자가 이내 커다란 파리 시내 지도를 펼친다. 남자는 나에게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가리켜달라고 영어로 말한다.

도톰한 광택지 지도가 내 무릎 위에 펼쳐진다. 나는 우리가 탄 지하철 노선에 손가락을 올린다.

지도의 밑에서부터 위까지 관통하는, 장밋빛 스파게티 같은 긴 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바둑판무늬가 크고 작은 묘지와 십자가처럼 보인다.

땡큐. (p.12)


낯선 이, 외국인이 내게 지도를 내밀며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는 그 말이, 그때의 뉘엘에게 가 닿았다는 게 놀랍다. 지금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해서 렌즈도 빼먹을 정도로 정신이 사나운데, 그 상황에서 낯선 이에게 지도를 같이 보고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킬 수 있다는 게, 바로 인간의 놀라운 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평온한 듯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어떤  생각들이 가득할지 모르고, 내가 웃는 듯 보여도 그 안에 어떤 사정들이 뜨겁게 들끓어 오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일을 하러 가고, 사람들을 만난다. 


뉘엘에게 저  시간 지하철 안은, 아니 그게 어디라도, 너무나 힘든 곳이었을 텐데, 그런데 다른 이에게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위치를 가리켜줄 수 있는 일, 인간이 자신의 인간적 특성의 가장 깊은 부분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 낯선 이에게  지하철 옆자리의 뉘엘은, 그저 파리에 사는 현지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도를 내밀며 여기가 어디야?라고 물을 때 그에게, '혹시  저 여자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지금 정신이 사납거나 하진 않을까?'같은 걸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나는 방향치에 길치이며 지도를  봐도 여기가 어디고 저기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낯선 이에게 길을 묻는다. 건대 앞에서도 그랬고  창원에서도 그랬고 대전에서도 그랬고 싱가포르에서도 그랬고 뉴욕에서도 그랬다. 쿠알라룸푸르에서도 그랬고 하노이에서도 그랬다. 그렇게나  자주 낯선 이에게 길을 물을 때, 나는 한 번도 내게 길을 알려줄 사람의 개인적 사정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사람의 내면에 어떤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길을 알려달라는 이방인의 이  '사소한' 질문. 그러니까 나는 이것이 너무나 '사소'해서 상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다. 


그러나 뉘엘에게, 뉘엘에게는 어땠을까. 뉘엘에게는 지금 일분일초가 너무나 급하고 초조하고  애가 탔을 텐데, 머릿속에 여러 가지 기억과 생각과 추억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텐데, 그런데 지도를 같이 들여다보고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는 일이, 과연 사소했을까? 


내가 길을 물었던 그 많은 순간에 내게 답을 해준 사람들에게도, 매번 사소했을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준 적이 많았는데, 그때 나는 늘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금 여기야' 혹은 '응 저 길로 가서 왼쪽으로 돌면 돼'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그게 인간적 특성인 건  아닐까.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지금 마음이 시끄러우니 '몰라요'라고 해도 됐을 텐데, 그런데 기어코 대답을 해주고야 마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나에겐 사소하지만 누군가에겐 결코 그 사소하지 않은 순간이, 그 누군가의 배려로 사소함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그게 인간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부분에서 괜히 감동을 받아가지고, 뉘엘,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아무도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속으로 말했다. 




뉘엘의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야 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그간의 삶이 행복했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삶을 스스로의 결정으로 끝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딸에게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p.61)고 말한다.  깊은 고민과 대화 뒤에 뉘엘과 파스칼은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에 가 그  일을 진행하기로 한다. 언제가 좋을지 시간을 정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 단체와 만나 이야기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뉘엘은 '스위스 부인'에게 혹여나 결정해놓고 나중에 취소한 경우는 없었는지 묻는다.



  

어쩌면 베른에 도착하니 아버지 생각이 바뀌어서 우리는 파리로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는  스위스 부인에게 환자 중에 계획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는지 물었다. 스위스 부인은 그런 일이 딱 한 번 있었다고 대답했다.  중병에 걸린,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는데 젊은 아내와 동행했다. 부부는 베른 시내로 산책을 나갔고 마지막 저녁을 위해 아내에게 빨간  드레스를 선물했다. 남편은 아내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동안 호텔 바에서 기다렸다. 빨간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아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남편은 살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부부는 스위스 부인을 초대 헤서 샴페인을 마셨고, 다시 떠났다. (p.211)





아… 빨간 드레스 차림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살기를 결심할 수도 있구나.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런데, 윌은 다른 선택을 했지.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클라크인데, 그런 클라크가 있어도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삶을 끝내려 했었지.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얘기다.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살림, 2013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p.388)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클라크, 그런 클라크가 자신의 옆에 있는데도, 윌은 자신의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아니,  이건 내가 원하는 내 삶이 아니에요, 하면서.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는 그랬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빨간 드레스 입은 아내가 아름다워 살기를 결심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아, 윌 ㅠㅠ




"미안해요. 내겐 충분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을 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말하기 전에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꼭 정확한 단어들을 골라야만 하겠다는 듯이.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물러설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삶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내'인생이 아니에요. 당신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요.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단 말입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다고요." (p.471-472)


나는  윌의 말을 이해한다. 사고로 신체에 마비가 찾아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으로 인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어졌지만, 그러나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  그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어야 했는데, 스스로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는 거. 그렇지만, 그렇지만.... 죽음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남아있는 클라크는, 도대체 그 슬픔을, '나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며 죽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을  보는 클라크는, 어쩌나. 



이 페이퍼를 쓸 때만 해도 미 비포 유 까지 가져올 생각을 하진 못했었는데…




그러나  윌이 클라크 만으로, 그러니까 아침에 눈을 뜨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클라크의  잘못이 아니다. 클라크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차은주는 자신의 노래 <알 수 없어요>에서 '내가 많이 부족한가요'라고  떠난 연인에게 물었지만, 박화요비는 자신의 노래 <그런 일은>에서 '내가 미워졌나요?'라고 물었지만, 아니, 윌이  자신의 결정을 한 것은 결코 클라크가 부족해서도, 모자라서도, 잘못해서도 아니다. 클라크가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클라크  자체로는 충분하고 완벽했다. 클라크가 거기에서 더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윌이 원하는 삶은 클라크가 전부인 삶이  아니었던 거다.



제기랄.

인간의 대단함, 위대함, 복합적임 뭐 이런 것에 대해 얘기하려다가 사랑과 이별로 끝나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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