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용기내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해방
#소중한것은소중한사람에게만
#웃을때를아는여자가아름답다
언젠가, 너무나도 싫은 사람 앞에서 웃음으로 대응하고 있는 나를 깨닫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일은 두고두고 스스로에게 큰 상처였다. 사회생활하면서 나보다 연배, 지위가 높거나 내 생계와 직결된 생사여탈권을 지닌 자들에게는 함부로 감정이나 반대의견을 드러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처럼 구조적으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었다.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나 다름없는 동등한 사이였고, 그 인간이 하는 생각과 소리가 천박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데다가,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는데, 정작 나는 웃고 있었다. 이렇게나 내적으로 분명하게 싫다고 느끼는데, 왜, 무엇 때문에 내 감정을 상대에게 여실히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어서 내 앞에서 꺼지라고, 곁에 다가오지 말라고, 말도 안 되고 냄새나는 그 생각을 좀 치우라고. 왜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상대에게 전하지 못했을까. 왜 미소로, 웃음으로 좋은 사람인양, 착한 여자인 양 굴고 있는 걸까.
돌아보면 나는 소통하는 데 서툴고 자신의 감정을 화로 주로 드러내는 억압적인 부친 밑에서 자랐다. 살면서 그와 10분 이상 긴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그는 주로 내 생각을 묻기보단, ‘잘 들어라 짧게 이야기하겠다’며 자기가 할 말만 하달한다. 어릴 적부터 그런 부친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 역시 교사와 아버지라는 권좌에서 잘 내려오지 않았다. 부친 앞에 서면 몸과 입이 굳었다. 그런 부녀의 관계는 그대로 고착되었고,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 관계의 속성은 달라지지가 않았다. 딸은 그와의 대화 자리를 슬슬 피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온 후 직장에서 상사가 남자일 경우 특히 소통이 어렵다 느끼곤 했는데, 아무래도 부친과 어렸을 때부터 경험해온 어른 남자와의 불통이 이후에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특히나 성격이 불같은 다혈질 남자 상사라도 만나면, 아주 뜨거운 불에 덴 듯 놀라 다음날이라도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때 일화를 계기로 마음이 허락하지 않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이상 웃음이나 미소를 예의로 사용하지 않겠다 맘먹었다.
그 탓에, 어느덧 만만치 않은 인상의 여자가 된 듯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훨씬 좋다. 진실에 가까운 나로, 나다운 채로 상대방과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한번 진심을 담아 한번 환하게 웃으면 그게 더 강력한 긍정의 에너지로 상대방에게도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직설적이라는 평을 듣곤 했는데, 그 때문에 내 말에 헉 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거나 상처를 입었다는 이도 주변에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직설적인 이빨도 이성 관계나 감정 문제에 한해서는 예외였다.
마음 깊이 좋아하고, 의지해서 곁에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표현 못하고 되레 ‘나는 네가 하나도 안 필요해, 네가 없어도 나는 괜찮아, 우리 그냥 친구지’라고 홀로 벽을 친 경우가 많다. 자기감정을 이리도 다룰 줄 모르는 어른이라니. 돌아보면 ‘감정’을 어떻게 쓰고 표현하는지 잘 몰랐다, 제대로 배우질 못했던 거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부모의 기대에 반하는 선택을 종종 했다. 대학이 그랬고, 기혼자에서 싱글이 될 때 그랬다. 내 결정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컸고 내상도 동반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결정이 맞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을 많이 몰랐다. 물론, 부모에게 내 생각과 결정을 유연하게 전달하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서른 후반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 헤어지기로 했을 때, 부친은 ‘부녀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저리 무시무시한 말을 뱉어 놓고도 모자랐는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그 당시 나에게 이 말이 와닿지 않았다. 혼자되려는 결정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일인지 술에 취한 부친이, 단순히 나를 겁박하려고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간에 대해 큰 배신이랄 만한 걸 경험해본 바가 없었고,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인간’에 대해 내가 진심으로 대하기만 하면 상대들도 모두 내게 그렇게 대해주리라 여겼다. 순진하게도.
아주 나중에, 이국 땅에서 말도 문화도 낯선 이들과 섞이면서 모든 인간에 대한 판단기준이 무너지고, 다시 정립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눈앞에서 숱하게 거짓말을 하고, 감정을 속이는 사람, 이유 없는 친절과 호감을 사는 행위로 나를 자기 곁에 묶어 놓고 괴롭히려는 사람. 속을 알 수 없이 아주 검은 심연을 가진 인간 들을 만났다. 이런 만남은 인간에 대한 내 믿음을 산산이 깨뜨렸고, 다시 몇 년에 가까운 시간을 인간 자체에 대한 회복을 신뢰하는 데 써야 했다.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선의가 모두에게 선의가 아닐 수 있다. 진심으로 대해도 그 진심에 상응하는 것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고, 오히려 더 엉망인 대접을 받을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그때 아빠의 저 말을 떠올렸다. 세상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아빠도 알고 있었겠지. 보호막 없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딸에게 벌어질 일을, 어쩌면 아빠는 예견했는지 모른다.
나는, 한국을 떠나 있던 지난 몇 년간, 고마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켜졌다. 그렇게 굳게 믿는다.
‘왜 나는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는지, 왜 우리 가족들은 이렇게 내게 무심한지, 우리 부모는 왜 저리 괴팍하고 독단적인지’ 생각이 든 적도 많았지만, 그것 가지고 불평하기엔 헤쳐나갈 일이 산더미다. 조금 모자란 원가족의 관심과 지원 대신에, 내게 전폭적으로 심적으로 물적으로 지원해준 이들이 많았다. 중국의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남녀의 인연을 주관하는 월하노인이라는 사람이 있다. 월하노인은 짝이 될 남녀의 발(혹은 손)에 빨간 실을 걸어주는데, 그래서 이 둘은 천리만리 떨어져 있더라도 결국은 부부 또는 짝이 된다고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월하노인이 내 손에 이어진 빨간 실을 그 친구, 동료, 선후배 들 손에 걸어주었나 보다 상상한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태어난 복이라고. 선의로도 대할 필요가 없는 인간 들을 만나 다치고 휘청거린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 덕에 지금까지 나는 온 우주가 돌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