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디에도 없는 사람 Oct 19. 2021

집에 처음 남자를 데려온 날

1부 딸들은 자라서 엄마가 될까

#부모도상처가많아그런다

#세상을향한보호막


나이 서른이 되도록 한번도 남친 있단 소리를 안 하는 딸이 나의 부모는 이상하거나 초조하지 않았을까. 딸년이 언제쯤 연애를 시작할지, 언제쯤 결혼할 남자를 데려올지 궁금하지도 않았나. 첫 연애를 20대 중반에야 시작했고, 그 이후로 몇 번의 연애와 연애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가족에게 상대를 이야기하거나 소개를 한 적이 없다. 사실 부모와 연애 이야기뿐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자주 나누는 사이가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서른 즈음에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어른스러웠던 남자를 집에 데려가 가족에게 소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마, 우리가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남자를 집에 데려가 가족에게 보여주는 일 같은 건 없었을 거다. 만나고 있는 상대를 친구, 주변 사람, 가족에게 소개할 때 쉽게 맞닥뜨리게 되는 건, 누가 더 낫네, 누가 좀 쳐지네, 레벨이 안 맞네, 오래 못 가겠네 같은 소리들이다. 굳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고, 무서운 칼질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만나는 남자들과, 대부분 비밀 연애를 했다. 우리 둘을 모두 아는 사람이 우리가 연인이라는 걸 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남자를 집에 데려가 소개하던 그날, 내심 가족들이 이 남자를 좀 더 신중하고 또 냉정한 눈으로 따져봐 주길 바랐다. 그들 눈에(내가 보지 못하는) 결정적 하자는 없는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자신들의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앞으로 그에게 무슨 계획이 있는지 꼼꼼히 봐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게 가족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유치한 마음인지는 몰라도 그 남자 앞에서 자기네 딸이 얼마나 귀한 딸인지,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이뻐하는 자식인지 뽐내주기를 내심 바랐다.


상대를 물건 고르듯 평가하거나 고압적인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방이 자신이 고른 여자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가족의 입을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마치 "아이고, 문제 많아 시집보내기 어려울 거 같았던, 골치 아픈 내 딸자식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넙쭉 절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전혀 상대에 대한 '검열'의 과정을 거치지도,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추임새조차도 없이, 바로 그를 맞아들였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남자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나서, 종종 이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왜 나의 부모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 혹은 남에 대항해 보호해주지 않는가. 왜 자신의 자식이 얼마나 잘났고 훌륭한지 남 앞에서 칭찬하지 않는가. 앞의 에피소드와 지금 내 말 사이에 다소 비약이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 하나의 에피소드를 더 추가한다.


중학생 때였다. 그날 유독 엄마가 지난밤 꿈자리가 안 좋았다면서 내 외출을 극구 말렸다. 꿈자리가 안 좋다는 엄마 말만 듣고 바로 베프와의 약속을 깰 십 대는 없다.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룰루랄라 길을 나섰다. 횡단보도에 도착하자, 반대편에서 친구가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어서 친구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빨간불 동안 내 발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게 했다. 초록불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친구를 향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그때 신호를 보지 못하고 우회전하던 자동차가 나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넘어진 나의 발이 자동차 바퀴 아래 깔렸다. 차 사고였다.


엄마의 꿈이 맞았다. 명백히, 운전자의 과실이지만 초록불에서도 좌우를 살펴야 하는 데 그러지 않았던 나의 불찰도 있었다. 운전자는, 합의를 하기 위해 집에 전화를 걸어왔고, 그 전화를 받던 엄마의 대응이 오래도록 잊히지가 않는다. 내 기억엔 합의금이라곤, 그때 내가 신었던 갓 산 구두 값의 두 배 정도였다. 그리고 엄마는, 마치 잘못한 사람이 나라도 된다는 듯, 전화를 받는 내내 그 운전자에게 굽신거리고 사과했다. 엄마는 그게 예의라고 배운 모양이지만, 사실관계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였다. 무엇보다 딸의 자존감에 큰 스크래치를 낸 큰 사건이기도 했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제 딸이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요? 후유증이라도 있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아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니, 간단하게 합의로 끝낼 수 없습니다' 등등, TV나 신문지상에 오른 부모들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도 잘만 소리를 지르고 자식을 위해 싸워주던데, 세상을 향해 보호막이 되어주던데... 현실 속 내 부모는 왜 이리도 물렁뼈란 말인가. 이럴 때 교양 좀 없으면 어떤가. 자식에 대해서라면 눈이 뒤집히는 게 부모 아니던가. 난 부모가 아니라 모르겠다.


여전히 자주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렇다. 부모는 내게 있어, 사랑에 아주 서툰, 당신들도 어린 시절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인생 풍파를 헤쳐오느라 자기 상처도 잘 치료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의 삶을 뼈아프게 정리하고 외국에 나와 대학원에 다니던 중 방학을 맞아 잠깐 한국에 들어갔을 때였다. 식탁에 마주 앉은 내게 아빠가 말했다. "아직도 그 나라 말 제대로 못하지? 통역하거나 그럴 실력은 안 되지?"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딸의 대응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통역은,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나라에 오래 산다고 가능한 영역이 아니야." 더 이상 서툰 부모의 말과 행동에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방식이 얼마나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지, 얼마나 잘못됐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가 너무 늙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이, 그것도 아빠라는 사라 딸에게는 "너 이거 못하지?"라는 비꼬는 말투로 말을 건네는 꼴이라니. 마치 상대방을 깔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현재 내 외국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으면, "이제 소통하는 데는 문제없겠다? 잘하겠네~"로 접근하는 게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일을 한 지 수년이 된 딸의 외국어 수준이 궁금해서 한 말이었다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아주 빵점의 방식이었다. 아니, 마이너스 50점이다. 딸을 아빠가 어떻게 보는지를, 얼마나 존중하지 않는지 강렬하게 전달한 한 방이었기 때문이다.

칭찬이 뭐가 그렇게 어렵나. 인정은 또 뭐가 그리 곤란한 일인가. 딸의 자존감을 건강하게 형성하는 데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또 자식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고꾸라지게 하는 데 그것의 부재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역시 없다.

작가의 이전글 손 끝을 스친 그녀의 피부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