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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릇 Jul 07. 2022

[서문] 우린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우당탕탕 농촌 유년기의 시작을 알리며

97년의 추운 봄에 태어난 나는 유아기 대부분의 시간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냈다. 엄마, 아빠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육아에 투자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할매, 할배 손에 크게  것이 나의 성장배경이랄까. 안동이라는 소개를 하면 으레 그렇듯 “~ 하회마을? 하회탈?” 이라는 반응을 듣곤 했다. 그래 맞다.  하회마을 안동이다. 할아버지들이 아직도 갓을 쓰고 다니고 여자와 남자가 먹는 밥상을 따로 차리는  동네. 나를 남혐 페미니스트로 만든 원인 제공의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유년기의 찬란한 기억 때문이다. 기억 속엔 한 살배기 소정의 울음을 그치기 위해 사랑방에 그네를 매달고 설렁설렁 밀어대던 할아버지의 사진이 한몫을 했다. 호박꽃이  때면 윙윙 거리는 벌을 잡겠다고 노오란 꽃망울을 접어재껴버리던 할머니의 꿀팁 아닌 꿀팁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할매, 할배와 내가 맺었던 관계성은 조금 유별났다. 그들은 어릴 적 나를 키워냈다는 마음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를 ‘애’로 보며 알뜰살뜰 아끼곤 했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 오는 내 팔자 덕에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로 꽤나 많은 돈을 벌었고 월급의 일부를 떼어다가 3-40만 원 정도를 용돈으로 챙겨드렸다. 봉투에 담긴 금액을 보고 놀라던 표정도 재밌었지만 그다음 이어진 말이 더 가관이었다.


“아니 무슨 아가 돈을 버나!”


    나는 ‘아’가 아니다. 성인이다. 스무 살이 넘어도 그들의 눈엔 내가 ‘아’로 보이나 보다. 문자 그대로 내가 아이이던 시절엔 그들도 꽤 젊었으니까,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마음이 시간을 멈춰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장년기, 나의 유년기 시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퍽 다정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쌍방의 사랑이 어려운 이 세상에서 우린 서로를 사랑했으니까. 제법 따뜻한 이야기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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