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예찬

티끌 없이 순결한 당신의 덕질을 위해

by 구어령

날이 밝아온다. 새 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아직 차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잠시 창밖을 내다본다. 햇살이 참 맑다. 아, 새벽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나는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았을까. 아침형 인간들은 이런 새벽을 보기 때문에 성공하나 보다. 고요함 속에 여기저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정주행 중인 드라마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 나의 휴가도 그렇게 끝나간다. 이 새벽까지 난 무엇을 한 걸까. 저 햇살이 왜 날 부끄럽게 하는 걸까. 갑자기 다 재미없어진다. 잠이나 자야겠다. 오늘 지나면 출근인데, 또 시차 적응 안 되겠네.




덕질은 즐겁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약속이 없는 금요일, 할 일 없는 주말에도 덕거리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덕질은 그렇게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티끌만 한 스트레스도 없는 완벽한 즐거움의 세상으로 말이다. 그래서 덕질은 가장 순결한 취미이다.

문제는 덕질의 용도이다. 우리는 가끔 소중한 덕거리를 고작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푸는데 소비한다. 덕질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정말 사라지는 것 같다. 아무런 잡념이 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때뿐이다. 덕질이 끝나갈 때쯤, 날이 밝아올 때쯤, 출근시간이 가까워 올 때쯤 마음은 다시 스트레스로 가득 찬다. 잠시 잊었을 뿐, 모르는 척했을 뿐, 스트레스는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대하는 마음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퇴근할 때 쌓인 스트레스를 한 껏 가슴에 품고 나와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노력한다.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덕질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라질 녀석이 아니다. 가슴 아프게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는 노력처럼, 우리를 아프게 하는 스트레스도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잊히지 않는다.


퇴근할 때는 몸 만 아니라 마음도 퇴근시켜야 한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회사에 두고, 몸과 마음이 함께 홀가분해져야 한다. 여행을 위해 여비를 벌었을 뿐이다. 여비를 벌기 위해 오늘 하루 할 일을 다 했고, 끝났으니 더 이상 그곳의 일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밖에 나왔으니, 이제 밖의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여비를 버는 삶과 여행을 다니는 삶이 같을 수는 없다. 퇴근하면 나는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이다.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 둘 사이에 빛 한 줄기 새어 나오지 않을 만큼 튼튼한 문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잊는 것이 아니라, 가두는 것이다. 내일 다시 만나야겠지만, 내일 퇴근할 때 또 가두면 된다. 그렇게 나로부터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순수한 즐김으로써 덕질을 마주해야 한다. 덕질은 그때 비로소 제 힘을 발한다. 온전히 나만의 즐거움으로 가득 찬 세상, 우리는 이 세상을 더 멀리 여행하기 위해 여비를 버는 것이고, 그러니 여비를 벌며 받는 스트레스는 고작 일회성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건 당신의 덕질을 응원한다. 이제 제대로 된 힘을 실어줄 때이다. 고작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풀어버리려고 덕질하지 말라. 당신의 온 즐거움이 담겨있는 소중한 활동이다. 직장생활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활동이다.

덕질을 위해,

직장생활은 거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