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 진심으로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직장인을 만날 때가 있다. 크게 두 부류이다. 하나는 흔히 ‘로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회사 경영진의 가족이나 친지쯤 되는 사람들. 의외로 이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한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회사에서 아쉬울 것이 없다. 급여도 승진도 순리대로 갈 테니. 어쩌면 그런 순리가 남들보다 더 큰 책임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난 안 돼봐서 모르겠다.)
또 한 부류는 아무런 끈도 없지만 진심으로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오랜 기간 한 회사만 다녔거나, 스스로가 이 회사에 평생을 바칠만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 가치는 제각각이다. 회사의 규모, 사회적 영향력, 자신의 업에 대한 만족감, 특정 상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신뢰 등이다. 물론 이런 관계가 일방적 짝사랑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 그렇게 회사를 사랑하니, 회사는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충분한 보상을 받으니 충성심이 더 커지는, 아주 긍정적인 선순환인 셈이다.
그 외에는 만나보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가도 술이라도 한 잔 하면 다 똑같은 마음이다.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죠. 먹고살려면 별 수 있나요. 욕 안 먹으려면 잘해야죠. 좋은 자리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요.'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진심을 다해 일하는 앞의 두 부류 사람들은 취미 같은 것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부족함이나 허전함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으니까. 오늘에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에, 내일도 그럴 거라 믿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 어쩌면 이미 그럴듯한 취미 하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로 취미라고 인식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들에게는 보통의 직장인에게는 없는 ‘내일에 대한 확신’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보통의 직장인들은 확신도 취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니 하루하루는 늘 불만이고, 내일을 바꾸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마음에 여유는 없고, 당연히 취미는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정작 그들에게는 여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기에 취미를 갖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이지 않고 바뀌는 것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내일을 바꾸겠다는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노력은 아니다. 고작 취미 하나 가져보는 즐거운 노력, 부담 없는 즐김이다. 술을 마시고 싶은데 아무도 안 따라주니 내가 따라 마시는 정도의, 가볍게 내 마음을 채워가는 일이다.
물론 아무 취미나 가질 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즐긴다고 즐겼는데 아무리 즐겨도 허무함만 남을 수도 있으니까. 취미 선택에도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다. ‘취미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가졌을 때 취미를 찾는 일은 조금 더 쉬워질 수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 데 참여했다고 해서 그 건물을 내가 지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내가 일하는 직장과 협력업체, 그리고 돈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내가 그 일을 통해 만들어낸 실제 결과물, 내 손에 쥐어지는 산출물은 ‘월급’ 혹은 조금의 '인센티브'가 전부이다. 모든 직장 일이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이다. 아무리 많은 피와 땀과 노력과 정성을 쏟아부어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결과물은 달라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이 취미를 고를 때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생산의 즐거움’이다. 이 취미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생활 내내 똑같은 것만 만들어왔다. 그나마도 손에 잡을 수도 없는 통장의 데이터로 말이다. 그러니 열심히 일을 해도 보람이나 성취감 같은 것은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제 내 손안에, 내 눈 앞에, 내 마음속에, 내가 내 손으로 만든, 월급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남겨보자. 생산 없는 즐거움에만 그친다면 그건 단지 시간을 때우는 일에 불과하다. 결과물이 있어야 내 ‘활동’이 증명되고, 그 증명이 내 삶을 증명하고, 그래서 나는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된다. 그 모든 생산 과정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정한 직장인의 취미가 시작된다.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정주행을, 핸드폰 게임을, SNS 마실을 취미로 볼 것인가 아닌가는 결국 당신의 판단이다. 그 일들을 통해 ‘생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취미이다. 그렇지 않고 시간만 잘 때웠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 하고 나니 여전히 허전함이 남아있다면 그건 취미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나를 위한 즐거운 생산 활동.’
크건 작건, SNS에 올릴만한 것이건 아니건, 물리적이건 정신적인 것이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생산을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우리의 취미가 될 수 있다. 술을 좋아한다면, 술을 직접 담가보자. 영화를 좋아한다면,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한 번 써보자. 내가 좋아했던 일들은 그렇게 취미가 되어갈 수 있다.